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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후는 자녕궁 회랑에 서서 상궁이 궁인 명을 지휘하여 화방에서 보내온황학령(鹤翎)’자하배(紫霞杯)’ 화분 수십 개를 가지런히 진열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해가 지며 노을이 하늘 가득 퍼져 마치 매우 좋은 비단 같아서, 노란 국화와 자색 국화들을 비추니 휘황찬란했다. 


상궁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자녕궁의 정원이 무척 널찍하고 트였사옵니다. 만일 수강궁에 있었으면 국화 화분들을 곳이 없었을 것이옵니다.”

상궁은 태후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며 덧붙였다. 

 이는 황상의 효심이오니, 그날 황후를 이끌고 친히 오셔서 마마께 궁을 옮기시라 청하셨죠. 이제 좋은 것은 모두 먼저 마마께서 쓰시도록 보내오시고요. 화방에서 피운 제일 좋은 자색 국화도 모두 마마의 궁으로 보내왔지않사옵니까.” 


태후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궁의 손을 잡고 층계 아래로 내려와 폭포수 같이 피어난 꽃잎들을 화분 하나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렇구나. 따져보자면 애가가 황제를 그렇게 아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날 비록 황제와 황후가 와서 청하기는 했지만, 배후의 공로가 누구의 공로인지 애가는 알고 있지.”


 “한비 말씀이시옵니까?”


태후가 일어나 송이 국화를 잠시동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색이 뚜렷한 꽃이 마치 황금같구나. 허나 애석하게도 피어날 힘이 없구나.”


상궁이 웃으며 말했다. 

 마마께서 보살피고 가르치시는데, 꽃이 피는 것도 순식간의 일이지 않사옵니까?”


급할 없지. 정원에 가득한 중에 앞에 있는 꽃봉오리는 피어있고 뒤에 있는 것은 급하지 않지.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와 땅의 조건 때문이니라.” 

태후가 꽃을 잡은 손가락을 놓고 치며 말했다. 

 황상이 아이에게 그저 비의 자리를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잠저의 신분에 따르자면 아무리 못해도 귀비나 황귀비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상궁이 비단 손수건으로 태후의 손을 닦으며 말했다. 

 복이 있으면 당연히 얼마 있지 않아 지위가 올라가겠지요. 앞으로의 시간은 길지 않겠사옵니까.”


 “혜귀비는 곱살스럽게 알지. 가끔씩 황후와 함께 애가의 처소로 와서 문안을 올리고, 법도에도 틀림이 없다.”


상궁이 말했다. 

 궁중의 법도에 따르면 당연히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올려야하는 것이나, 황후와 비빈들은 사나흘에 겨우 오지 않사옵니까. ……” 


 “애가는 자녕궁에 거하는 명분 정당한 태후이니, 하루에 와도 좋고, 사나흘에 와도 그만이고, 모두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애가의 눈이 후궁을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 태후라는 자리가 본래 집사 할멈이 아니니 일일히 참여하고 개입할 필요는 없으나 큰일에 있어 이끌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해야 진정한 권력이 남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원한을 사지 않는 것이니라.”


상궁이 이제야 웃으며 말했다. 

 태후의 뜻에는 소인이 정말로 미치지 못하나이다.”


밤이 내리깔린 장춘궁은 유난히 조용하여, 밝은 노란색의 흐르는 구름과 박쥐 문양의 장막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고요하게 바닥으로 굽이치니 하나의 작은 세계 같았다. 랑화는 황제의 어깨에 기대어 황제의 밝은 황색 침의에 달린 금색 단추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미소지을 아무 말이 없었다. 


황제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아 웃으며 말했다. 

 황후는 그동안 단정하고 진중하였는데, 어찌 갑자기 짐에게 이리 다정하게 구는 것이오?”


랑화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신첩이 단정하고 진중한 것만 보시고 신첩이 황상께 의지하는 것은 보지 못하셨사옵니까?”


황제가 장막 위쪽을 바라보다가 입꼬리에 아주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황후가 후궁에서 힘을 다해 홀로 결정하고 짐을 위해 걱정을 나누니 짐은 기쁘오. 허나 황후의 황후다운 모습에 익숙해지니 이런 어린 아이같은 모습은 오히려 보기 어렵구려.”


황후는 잠시 잠자코 있다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후궁의 어린 아이가 정도 많고 근심도 많아서 속좁게 질투로 다투는 일을 피하기 어렵사옵니다. 신첩이 근신하지 않고 편파적이라면 어찌 사람들이 비웃지 않겠사옵니까?”

황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상의 뜻은 신첩이 오늘 아침에 한비를 연희궁에 머물도록 제의한 것이 조금 부당하다 생각하시는 것이지요.”


황제는 조금 미소를 띄었다가 랑화가 기댄 어깨를 풀고 말했다. 

 황후는 육궁의 주인이니 후궁의 일은 당연히 황후의 결단에 따라야지. 황후의 제안이니 짐이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없지 않겠소.”


랑화는 마음 속으로 조금 놀라서 억울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황상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것은 신첩을 정말 과소평가하시는 것이옵니다. 설마 신첩이 몇년 동안 황상을 따르면서 몇몇 귀인들처럼 철없이 질투로 다툴줄만 아는 아시옵니까? 신첩이 그저 황상께서 최근 혜귀비의 신분을 끌어올리시니 당연히 은총도 늘어나고, 혜귀비가 어질고 정숙하니 황상의 관심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는 아시옵니까. 다만, 한비가 잠저에 있을 신분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건방졌는데, 지금 귀비가 조금 높아져 여러모로 순조롭지 않아 사람들이 서로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고 있으니, 한비를 조용한 곳으로 내보내서 마음을 가라앉히게 것이옵니다. 한비의 마음이 약간 안정되게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황상께서 다시 한비에게 상을 내리시고 은혜를 베푸시면 일이옵니다.”


황제가 손을 뻗어 황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황후가 세심히 고려하였구려.”


랑화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황제의 손등을 덮고 활짝 웃었다. 

 신첩의 우매한 의견이 어찌 황상의 현명하심에 비할 있겠사옵니까. 지난날 황상께서 한비는 지혜롭고 난초같은 성정을 지녔고, 혜귀비는 얌전하고 부드럽다 칭찬하셨사온데, 어찌하여 지금 한비의 봉호는 우아할 한을 내리시고 귀비에게는 슬기로울 혜를 내리셨사옵니까? 신첩은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바람이 은은하게 불어와 장막 밖의 두루미가 영지를 물고 있는 모양의 자줏빛 구리 촛대 위의 촛불이 경미하게 반짝거리며 흔들리는 장막을 비추니, 마치 물결이 흔들리는 같았다. 황제의 안색이 밝은 어두운듯 조금 명확하지 않았고, 그의 웃는 얼굴은 흐릿하여 마치 하늘에 얇게 피어오른 뜬구름 같았다. 

 짐도 가는대로 글자를 고른 것이오.” 

황제는 고개를 숙여 랑화를 바라보았다. 

 짐이 내무부에 분부하여 그대의 장춘궁을 신경써서 꾸미게 하였는데, 그대는 마음에 드오?”


랑화가 활짝 웃으니 마치 촛불에 갑작스레 나타난 송이 밝고 고운 불꽃 같았다. 

 황상께서 후궁에 머무시는 첫째 날에 신첩의 궁중에 계시니, 이것이야말로 신첩을 가장 신경써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옵니다.”


황제가 랑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고 더욱 다정하고 부드러워졌다. 

 짐이 마음 것을 그대가 알아주니 다행이오. 그대는 짐의 황후이며 항상 어질고 총명하여 후궁의 일을 그대가 처리하고 있으니 짐은 매우 마음이 놓이오.”


국상을 마치고 황후를 세우고 비빈을 봉했으니, 비빈들도 다시 소복과 은장식을 하지 않았다. 해란은 아침 일찍 남색 만주족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옷자락과 소맷단에는 하얀 작은 꽃을 드문드문 수놓아서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맑고 산뜻했지만 눈에 띄지는 않았다. 당연히 이것 역시 해란의 일관된 태도였다. 


해란은 평소대로 와서 여의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장춘궁으로 가서 랑화에게 문안을 올렸다. 


랑화의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정성을 들여 꾸민 용모에 부용의 벌꿀색에 붓꽃 가지를 수놓은 창의[각주:1] 입었고, 머리에는 황금편방으로 구름같이 검은 머리를 틀어올려 단정하게 쪽을 위에 드문드문 비취구슬이 박힌 은비녀를 꽂고 으름나무 몇송이를 꽂았다. 새벽같이 이황자도 유모에게 안겨서 들어오니 랑화는 더욱 기뻐했고, 비빈들도 이황자가 그새 자랐고 똑똑하고 영리해보인다고 이야기하며 시끌벅적했다. 


가귀인 김옥연만이 랑화가 온몸에 단장한 것을 살펴보며 방긋방긋 웃을 말이 없었다. 랑화가 어쩌다 발견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평소 가귀인이 제일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째서 오늘은 웃기만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장춘궁이 어색한 것인가?”


옥연이 황급히 웃으며 말했다. 

 신첩, 황후마마의 옷에 수놓아진 꽃송이를 보고 있었사옵니다. 비록 적게 수놓았지만 정말 시원하고 맑은 아름다움이 있어서 신선하고 상쾌해보이옵니다.”


랑화가 옷자락의 진주 단추를 조금 바로잡으며 웃었다. 

 가귀인이 항상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화장하는 것을 좋아하니 본궁도 자네가 평하는 것을 들어보고 싶네.”


옥연이 비스듬히 예를 올리고, 바람이 버드나무를 흔들듯 상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첩이 마마의 옷에 수놓아진 꽃가지를 보아하니 이전에 대청이 산해관[각주:2] 넘었을 궁에서 제일 유행했던 자수법인 같사온데, 종종 만주족의 의상에 드문드문 널찍이 아름다운 도안을 궁중의 자수 기법으로 수놓은 것으로 부귀 길상을 대범하고 정교하게 표현한 것이옵니다. 그리고 지금 궁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은 가볍고 부드러운 비단을 사용하여 가볍고 살랑거리는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때때로 옷자락과 치마의 끝단에 꽃무늬를 많이 수놓고, 몸판에는 정교한 꽃무늬를 주로 강남의 자수법을 사용하거나 아주 얇은 금실을 꼬아서 수를 놓으면, 설령 꽃가지가 많고 빽빽하더라도 더욱 부드럽고 더욱 아름다움을 추구할 잇사옵니다. 지금 황후마마의 차림새를 보면 정말 산해관 입관 때의 고풍스러움이 상당하옵니다.”


사람들이 옥연의 감칠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자신의 만주족 의상을 보고는, 비록 색과 문양이 제각기 다르지만 황후와 비교하니 과연 상당히 가볍고 부드러웠다. 


황후는 옥연이 말을 끝내는 것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똑같이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서 본궁은 지금까지 가귀인이 꼼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가귀인은 역시 세심한 사람이라 본궁의 뜻을 알아챌 있군.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본궁이 내무부의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후궁 여인들이 매년 옷을 짓는데 지출하는 비용이 이리도 많다는 것을 발견했네. 본궁이 입은 옷은 비록 꽃을 수놓았지만 꽃가지가 드문드문하고, 모두 궁중의 하녀들과 북경의 보통 장인들이 수놓은 것이지. 그런데 자네들이 입은 옷이 가볍고 하늘하늘하려면 강남이나 소주(苏州)에서 직조하여 진상한 것이어야 하고, 금으로 짜거나 금가루를 사용한 방법은 중에서도 차이가 현격하게 비싸더군. 게다가 후궁의 장식과 치장은 때때로 민간에서 따라하고 널리 유행하기도 하니, 도성에서 강남에서 옷감의 값이 배는 뛰고 자수값도 더욱 비싸질 수밖에 없지. 이렇게 오래도록 퍼져내려가 궁밖과 궁중에서 사치하는 풍조가 성행하면 이를 어찌 수습하겠는가.”


랑화의 마디 마디가 비록 상냥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지만 어찌 모든 비빈들이 속의 뜻을 모르겠는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감히 말을 더하지 못했다. 오직 순빈만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눈웃음치며 말했다. 

 황후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다만 황상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선제와 강희제께서 다스리시어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강대하오니……”


랑화가 담담하게 웃으며 찻잔을 들고 순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민간에 부는 삼대를 간다는 말이 있지. 설령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이 강대하더라도, 후궁 역시 사치하며 돈을 헤프게 써서는 아니되네. 그렇지 않으면 조상께서 남겨주신 유업이 몇대나 감당할 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순빈 자네는 이제 삼황자를 낳았으니 황상께서 보시기에 조금 낭비해도 당연한 일이지. 본궁은 그저 본궁의 이야기를 것에 지나지 않네.”


소심이 의중을 깨닫고 황후의 찻잔에 찻물을 따르며 말했다. 

 하온데, 어제 황후께서 내무부에 분부하시기를, 앞으로 설령 장춘궁의 장신구라 하더라도 기껏해야 황금과 진주만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시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장신구나 조화로 만든 으름나무꽃이고, 순금이나 동주, 남주는 조금 삼가라 하셨사옵니다.”


희월이 한가롭게 웃으며 손에 백은에 비취를 상감한 호갑을 바라보았다. 

 황후마마의 말씀은 신첩 따르고 있사옵니다. 삼황자가 있는 순빈 아우는 말하고 움직일 기력이 떨어지니 아무래도 같지 않지요.”


순빈이 비록 단순하지만 이정도로 말하니 무엇을 모르겠는다. 순빈이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황후마마 부디 굽어 살피시어 용서해주시옵소서. 신첩이 비록 황자를 낳았으나, 모두 황후마마의 복을 내리시고 비호하셨기 때문이옵니다. 신첩 감히 세운 공로를 믿고 교만할 없사오며, 사치와 낭비는 더더욱 꿈도 없사옵니다.”


랑화가 담담하게 웃었다. 

 됐네. 걸핏하면 무릎꿇고 그러지 말게. 도리어 본궁이 각별히 너희에게 가혹하게 구는 같지 않은가. 일어나게.”


순빈이 비로소 용기내어 몸을 일으키고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다. 


옥연이 매우 득의하여 비빈들을 훑어보고는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 웃으며 말했다. 

 황후마마의 말씀이 지극히 옳사옵니다. 다만 지금의 풍조가 이미 이러하니, 밖을 논할 것이 없고, 황상께서 조선에 내리신 옷감과 장신구 역시 정교하고 화려하옵니다. 신첩이 오가는 조선의 사자의 이야기를 들었사온데, 조선국에서도 전국을 휩쓸고 있다고 하옵니다. 만약 우리가 산해관 입관 때의 의복과 장신구로 바꾸고 이와 같이 종친과 지위 높은 후궁 여인이나 속국에 상으로 내린다면 어찌 사람들이 놀라지 않겠사옵니까?”


옥연의 말은 스스로 우쭐거리며 아주 살뜰히 황후를 챙기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보존하는 말이었다. 여의와 해란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바로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랑화가 가볍게 차를 모금 홀짝이고는 느릿느릿 말했다. 

 가귀인의 말도 당연히 일리가 있는 말이지. 황상이 바깥에서 은헤와 상을 내리시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네. 허나, 우리 육궁에서는 매사 소박하게 하는 편이 좋아.”

황후가 살짝 정색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천하가 안정되었으니 우리도 조상께서 산해관으로 들어와 천하를 평정하실 때의 어려움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네. 우리는 천하의 여인들의 모범이며, 항상 자신의 신분과 역대 조상들을 잊지 말아야 것이야.”


말에는 지극히 무게가 있어서 아무리 입심이 좋은 김옥연이라 지라도 예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지 않을 없었다. 


희월이 제일 먼저 일어나서 말했다. 

 황후마마께서 본보기를 보이신 만큼, 신첩들도 당연히 뒤따라야지요. 오늘부터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를 하지 않고 반드시 황후마마를 본받아 조상의 노고를 다시 생각하고 소박한 나날을 보내겠사옵니다.”


랑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본궁의 이러한 마음씀이 절대로 자네들에게 일부러 부담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자네들이 알아주게. 후궁에 사람이 많으니 사람들이 각각 조금 많이 쓴다면 황가가 크다보니 결국 어려워지는 때가 것일세.”


이때, 쪽에 앉아 숨죽이고 아무 말도 않던 이귀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인이 황후마마를 오랫동안 모시면서 황후마마께서는 항상 사치스럽지 않으셨사온데, 지금까지 옷자락에 달린 진주 단추까지도 내무부에서 가장 평범한 모양일 뿐만 아니라, 진주를 사용하는 것은 모두 너무 낭비라고 여기시옵니다.”


순빈이 서둘러 눈웃음치며 말했다. 

 이귀인은 전에 황후마마의 심복 시녀였으니 과연 모르는 것이 없군요. 보아하니 신첩들은 지금까지 너무 부주의하여 황후마마를 본받지 못했사옵니다.”


황후가 방긋 웃으며 이귀인을 보았다. 

 됐다. 이제 모두 황상께서 정식으로 책봉하신 귀인인데 여전히 소인이라 칭하니 어떻게 체통을 세우겠는가.”


이귀인이 서둘러 공손하게 말했다. 

 신첩, 황후마마의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희월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여의를 흘끗 보았다. 

 한비 아우님은 아무 말이 없으니, 설마 황후마마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다른 의견이라도 있는 것인가?”


여의가 눈을 들어 느릿느릿 말했다.  

 말과 행동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황후마마께서 몸소 실천하시고 우리는 당연히 말씀을 듣고 행동을 따르면 , 말참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해란이 서둘러맞사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신첩은 아둔하여 실언을 할까 감히 많은 말을 없사옵니다. 그러니 황후마마를 따라 세심하게 배울 , 감히 말을 많이 없는 것이지요.”


여의가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 황후마마의 뜻은 황상의 뜻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듣고 배우면 더욱 끝없이 이로울 것입니다.”


희월이 가볍게 웃으며 입을 가리고 말했다. 

 한비 아우님의 말씀은 오히려 황상께서 어젯밤 장춘궁에 머무신 것을 두고 시기심이 것이 아닌가.”


여의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방금 말한 것은, 마음이 화목한 사람은 당연히 황상, 황후마마와 같은 마음으로 후궁이 화목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것이고, 마음에 시기심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시기심으로 알아듣겠지요.”


희월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화가 같았다. 랑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됐다. 어젯밤은 황상께서 본궁의 황후로서의 체면을 생각하신 것이고, 앞날이 창창하니 자네들 모두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있으면 황상께서 자네들을 보러 오실 것일세.”


사람들이 하고 대답하자, 여의가 손목에 비취구슬과 금실을 순금 연화 팔찌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팔찌는 비록 신첩이 잠저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황후마마께서 직접 상으로 내리신 것이지만, 이제 궁중에서 검약해야 하니 신첩도 감히 다시 사용하지 못하겠사옵니다. 부디 황후마마께서는 윤허하여주시옵소서.”


여의가 이리 말하자, 희월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후의 표정이 마치 가을 바람과 연기에 젖어 서리를 맞은 시든 풀처럼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가을날의 밝고 고운 햇빛에 기운은 흔적없이 증발했다. 황후는 나무랄데 없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는 본궁이 이전에 상으로 내린 것이니 괜찮네. 더군다나 자네 둘은 아무래도 귀비이고 한비이니 섭섭하게 대할 없지.”

사람은 대답하고는 물러갔다. 


바깥의 가을빛은 그림같이 아름다운 와중에, 록균과 해란은 여의를 모시고 밖으로 나와, 사람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김옥연과 이귀인이 앞에서 걸어가면서 아직도 조금 불평하며 말했다. 

 아이고, 이제부터는 이런 강남의 부드러운 비단은 다시 입겠구나. 황후마마의 만주식 자수를 놓은 치파오가 비록 보기좋지만 약간 우아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에그......”


이귀인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귀인의 미모에는 무엇을 입어도 보기 좋지요. 좋지 않은 것은, 가귀인은 항상 치장에 열심이었으니 황상께서 분명 주의를 기울이실 거예요.”


옥연이 가볍게라고 외치고는 말했다. 

 이귀인은 황후 곁에서 오래 계셨으니 자연히 황후의 뜻을 알겠구려. 황후마마께서 이렇게 모범을 보이시는데 내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소.”


사람이 웃고 떠들며 계속 앞에서 걸어갔다


여의가 록균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오늘 일은 마음에 두지 말게. 황후께서는 조상과 왕실의 법도를 중시한 것일 , 자네를 질책하려는 뜻은 없었네.”


록균은 살짝 수심에 잠겼다

 황후의 뜻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앞서 대황자의 모친은 황후 집안 사람이고, 비록 죽었지만 신분은 여전히 고귀하죠. 이황자는 황후마마 소생이니 존귀하기가 비할 없는 적자이고요. 저만 신분이 이도 저도 아니고 아버지는 필첩식(笔帖式)[각주:3] 불과하니, 제가 요행히 삼황자를 낳지 않았다면 황상께서 어찌 제게 빈의 자리를 주셨겠습니까. 저도 신분이 높지 않은 것을 알고 평소에 공손히 삼가하고 분수를 지켰는데, 그런데 황후께서는 변함없이 마음에 두시고는......” 

록균은 말을 잇지 못하고 벌써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해란이 서둘러 비단 손수건으로 록균의 눈가를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가엾은 형님, 형님은 황후께 당연히 삼가고 공손하며 분수를 지켰지만, 형님의 생각은 단순해서 말한 것이 뜻한 것이죠. 여기는 밖이니 누가 보고 들으면 시비가 생길 있어요.”


록균은 두려움에 입을 다물고 황급히 비단 손수건으로 눈물자국을 문질러 닦았다. 주위는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고, 곁에서 시중드는 궁녀도 멀리 뒤에서 따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여의가 칭찬하는 눈빛으로 해란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네. 무슨 일이 있으면 궁에 가서 얼마든지 다시 이야기하세. 지금은 실언을 해서는 아니되네.”


록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은 다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어화원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가을 햇살이 마침 찬란하여 어화원의 각종 가을 국화들이 각별히 화려하게 피어 울긋불긋하니, 여전히 봄인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쳐지자 사람은 아까의 울적함을 떨쳐냈다. 버드나무가 기울어진 인공 산을 끼고 돌자, 여의는 앞에 있는 정자에서 옥연과 이귀인이 앉아서 한담을 나누는 것을 보고는, 록균과 해란과 함께 연못에서 붉은 물고기가 가볍게 튀어오르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옥연과 이귀인은 그들을 등진 앉아서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의 이야기에만 정신이 팔려서 시끌벅적했다


옥연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형님, 한비를 봉한 것에 대해, 나는 황상께서 봉호로 고르신 것이 정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오.”


이귀인이 손수건을 집으며 웃었다.  

 아우님 말씀을 들으니 우리가 황상의 뜻을 안다고 해도 좋겠구려.”


옥연이 머리에서 ()자가 새겨진 백옥 순금 비녀를 뽑아서 찻물에 담갔다가 탁자 위에 크게이라고 쓰고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한가할 () 계집 () 부수. 황상께서 등극한 이후 황후마마와 혜귀비 처소를 제일 즐겨 찾으시니, 한비마마는 수많은 나날을 황상을 뵙지도 못하고 있으니 하는 없는 한가한 여인이 아닌가?”


이귀인이 손수건을 들어 입을 가리며 웃는데, 이귀인을 모시는 궁녀 환심이 여의가 근처에 서있는 것을 눈치빠르게 알아채고는 황급히 낮게 외쳤다. 

 귀인께서 피곤하시니 일찍 궁으로 돌아가 쉬시는 어떻사옵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옥연도 심상치않음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여의 일행을 보았다. 옥연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아무일 없었던 태연하게 여의를 바라보며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빈첩은 그저 글자를 풀어 해석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이니 한비마마께서는 화내지 마시어요.”


이귀인이 여의를 흘끗 보았다. 

 한비마마께서 어디 설마 화를 내시겠는가. 화를 내시면 가귀인의 말이 맞는 말이 되지 않는가? 그러실 리가 없네.”


여의는 그들의 비웃는 말을 들으며 마음 속에서 화가 치밀었으나 그저 눌러 참았다. 


해란이 확실히 듣지 못하고 용기내어 말했다. 

 우리가 비록 잠저의 자매지간이기는 하나, 한비마마 앞에서 이같이 불경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옥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손을 내저었다. 

 해상재, 빨리 이리로 와서 말하게.”


옥연의 신분이 해란보다 높았기에, 해란은 옥연이 부르는 것을 보고 조금 머뭇거렸지만 감히 가지 않을 없었다. 해란이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옥연은 손을 뻗어 해란의 턱을 들어올리며 자세히 뜯어보았다. 

 수방의 시녀가 이제 상재가 되니 목소리도 커졌구나.”


해란이 난처하여 얼굴이 새빨개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옥연은 더욱더 재미있어서 유리구슬이 박힌 은상감 호갑으로 해란의 얼굴 윤곽을 따라 긁으니 한줄기 

해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같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귀인, 무엇을 하려는 것입니까?”


옥연이 방긋 웃으며 해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생각에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옥연의 손이 이미 여의에 의해 팽개쳐졌다.


여의가 차갑게 웃으며 해란을 보호하여 뒤로 물렸다. 

 귀인의 신분으로 상재 하나를 겁주는 것이 대수겠느냐? 너도 본궁 앞에서 혀를 놀려 입씨름이나 뿐이지 않은가. 본궁을 보았는데 아직도 공손히 무릎꿇고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이냐.”


록균이 급히 타이르며 말했다. 

 가귀인, 자네가 해상재와 농담을 것이라면 그냥 그럴 뿐인 게지. 허나 해상재는 담이 작으니 농담을 감당하지 못하네.”


옥연이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해란이 어떤 신분인데 내가 그녀와 농담을 하겠어요?”


여의가 옥연을 흘끗 보고는 유유히 말했다. 

 사람이 무슨 신분이면 무엇을 해도 된다라. 만약 네가 혜귀비의 신분 같이 본궁의 위에 있으며 본궁을 심하게 비난한다면 합당한 일이니, 그러면 본궁이 너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 이치에 맞는 일이니 역시 받아들여야겠지.”


옥연이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지지 않고 말했다. 

 당신이 비록 비의 자리에 있어서 나보다 한참 위에 있지만, 당신은 오라나랍 씨의 자손이고 나는 실상 조선 종실의 왕녀이니  신분을 논하자면 내가 당연히 당신보다 한참 고귀하오. 비록 신분이 잠시 당신의 아래에 있으나 설마 당신이 앉아있는 비의 자리가 확실할 것이며 지위가 올라갈 날이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죠?”


여의가 피식 웃었다. 

 네가 조선 종실의 왕녀라고 교만하여 생각해보지도 못했나본데, 조선이 훌륭이야 하다마는 우리 대청의 속국에 불과하지. 작은 나라의 적은 백성과 나라의 군주까지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신하를 자칭하는데 일개 종실의 딸은 말할 필요가 있나? 네가 정녕 본궁과 어떤 신분이 얼마나 고귀한지 논해야겠다면, 자신이나 단속하여 자기 신분에 맞는 언행을 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할 것이고,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고귀함이다.” 


여의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뒤에서 완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궁은 이리 신랄하게 말하며 관용을 베풀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한비였군.”


여의가 살짝 몸을 숙이며 차가운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옛날에 잠저에 있을 귀비께서는 온순하고 총명하셨는데 어찌 오늘 이런 모습을 보이십니까.”


혜귀비는 여의를 흘끗 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 그때는 자네의 서열이 나보다 높았으니 어쩔 수없이 자네를 존중했지. 지금 본궁은 귀비이고 자네는 비일 뿐이니, 높고 낮음에 차례가 있고 구름과 진흙은 엄연히 차이가 있어 자네는 이제 만사 아래에 있네. 만일 이런 것도 모른다면 자네도 후궁에 있을 필요 없네.”


여의가 잠자코 말이 없자, 귀비가 가느다란 눈썹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 인정하지 못하겠나?”


여의는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예의는 이미 갖추었는데 귀비께서는 사람의 마음도 손에 틀어쥐려고 하십니까? 만일 정말 그러하시다면, 이는 엄숙하고 장중한 태도로 사람을 내리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덕으로 사람을 복종하게 만드셔야지요. 

여의는 다시금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귀비마마의 신분이 높으시니 존중하지 않을 없사옵니다. 허나 귀비께서도 아시듯, 마마의 고귀함은 응당 공경하여 따르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권세로 위협하여 오는 것이 아니옵니다.”


여의는 말을 마치고는 마음대로 자리를 떠났다. 순빈과 해란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서둘러 뒤따랐다. 


옥연이 혜귀비가 참을 없이 화가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귀비마마께서는 저런 헛소리는 듣지 마시어요. 한비의 앞날이 평탄하지 못할 것을 보게 될텐데, 마마께서 구태여 한비와 언쟁하실 필요없사옵니다. 한비는 마마보다 지위가 낮으니 앞으로 한비를 손봐줄 날이 없겠사옵니까?”


혜귀비의 미간이 풀어지며 옥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가귀인이 본궁과 한마음이니, 본궁이 염려할 것이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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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비마마께서는 가귀인 뺨 한 대 안 날리시고 뭐하시는 거죠






  1. 창의(氅衣): 창의와 츤의의 형식은 대동소이하나, 츤의에는 옷단의 트임이 없고 창의에는 옷단의 좌우에 무릎 높이까지 오는 트임이 있으며, 이 트임의 시작 부분은 반드시 구름문양으로 장식했다. 또한 창의의 무늬가 훨씬 화려하며 테두리 장식의 자수는 더욱 정교하며 목깃, 소매, 옷깃까지 이어져 무릎 아래에 이르러 교차하며 옷자락의 옆단과 아랫단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색으로 수놓았으며, 기법, 자수의 재료, 무늬, 단추 등 모두 달랐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는 아름다움을 위해 더 많은 수를 놓아 테를 둘렀다. 청나라 궁중 부녀자들의 정식 옷차림. [본문으로]
  2. [역자주] 산해관: 만리장성의 관문 중 하나로, 제일 동쪽이자 시작점에 위치한다. 만리장성 밖에서 수도가 있는 중원으로 통하는 입구이므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시되어왔다. 청나라의 지배계급인 만주족은 산해관을 넘음으로써 중국 본토를 지배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3. [역자주] 필첩식: 청나라 만주족 전속 관직 중 하나로, 품계는 정6품에서 정9품에 이르며 조정이나 지방의 보조 부문에 배치되는 관직이다. 주요 업무로는 중국어 번역을 책임지고, 만주의 법규와 상소문, 문서 등을 필사하며, 청 초기에는 만주어와 중국어 상소문을 비교대조하는 일을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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