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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앵은 이 날 새벽에 일어나 무척 서둘러 머리를 빗고 세수를 마친 후, 바로 부찰 씨의 궁으로 시중을 들러 갔다. 


청앵이 갈 때쯤에 날이 막 밝아왔다. 여심은 청앵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발을 걷으며 웃었다. 

 소주께서는 일찍 오셨군요. 윗전마마께옵서는 이제 막 기침하셨사옵니다.”


청앵은 겸손하고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윗전마마께서 기침하실 때 시중을 들려면 마땅히 일찍 와야 하지.”

안쪽의 발이 걷히고 세수를 시중드는 궁녀가 수건을 들고 줄지어 나왔다. 청앵은 부찰 씨가 세수와 양치를 이미 끝냈고 이제 치장할 차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심이 안쪽을 향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마마, 청복진 들었사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모시거라.”


양쪽의 시녀들이 두 손을 들어 장막을 걷고 반쯤 몸을 숙여 눈썹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여 청앵이 들어오는 것을 맞이했다. 청앵은 설령 국상중이라 하더라도 부찰 씨가 있는 이곳의 규율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홀로 감탄했다. 


청앵이 들어왔을 때, 부찰 씨는 마침 거울 앞에 단정하게 앉아있고 머리 빗는 유모가 빗질하여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었다. 부찰씨와 황제는 나이가 엇비슷하여 자연히 단정한 자태가 이와 같이 드러나는 꽃다운 나이였다. 평범하고 단순한, 장식이 없는 각진 청옥 편방이 그녀를 유난히 산뜻하고 매혹적이어 보이게 했다. 바람을 맞는 한 송이 백목란과 같이 소박하면서도 차분하고 장엄했다. 


청앵이 문안을 올리자 부찰 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게. 자네가 모처럼 일찍 왔구먼.”


청앵은 일어나 사은하자 부찰 씨가 화장대 위에 열려있는 장식함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상중에 과다한 구슬 장식은 적당하지 않지만, 너무 아무 것도 없이 간소하게 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자네는 전부터 안목이 좋았으니 나 대신 골라주게.”


청앵이 미소지었다. 

 윗전마마께는 무엇이든 좋지 않은 것을 본 적이 없사오니, 천첩의 안목을 시험하시는 것에 불과하지요.”


부찰 씨는 살며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앵은 점취와 은으로 된 봉황이 구슬을 물고 있는 떨잠을 하나 골라 대보며 말했다. 

 오늘은 상례를 치르는 마지막 날이고 내일 정식으로 등극 대전이 열리지요. 윗전마마께서 비록 수수하게 꾸미셨지만 조금 눈에 띄는 머리 장식을 하시는 것이 적당합니다. 이 떨잠은 물총새 깃털을 단 봉황이고, 봉황의 눈에 달린 구슬은 진귀한 푸른 진주이니 청옥 진주로 만든 조화를 몇송이 더 꽂으시면 가장 단아하면서도 그런대로 수수하고 정결할 것이옵니다.”


부찰 씨는 머리 빗는 유모에게 웃으며 말했다. 

 청복진이 말한 대로 하지 않고 무엇하느냐.”


청앵은 한 발 물러나 곁에 서서 물건을 건네주며 시중을 들 뿐이었다. 부찰 씨는 친히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치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웃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훌륭하군, 측복진. 내가 이런 데 재주가 없어서 자네를 불편하게 했구먼.”


청앵이 황급히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부찰 씨는 거울로 이리저리 비추어 보며 웃었다. 

 자네가 골라준 진주 장식이 정말 흠잡을 데가 없군. 모든 일에 잘 처신하니 트집 잡을 곳이 없어. 그러니 복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이라고 할 만 하지.”

부찰 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자네는 그러다 억울한 일을 당할 걸세.”


청앵은 부찰 씨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황망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천첩이 우둔하여 마마께서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오니, 부디 청컨대 마마께서는 가르침을 내려주옵소서.”


부찰 씨는 청앵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자네가 어찌 왕부에 들어와 측복진이 되었는지 스스로 잘 알지 않나.”


청앵은 바닥에 꿇은 채 결국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 지 몰라 고개를 숙이고 차마 소리를 내지 못했다. 


부찰 씨는 청앵이 고개를 숙인 것을 보고 천천히 웃음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자네와 나는 자매나 마찬가지이니, 방금 내가 이렇게 물은 걸세. 자네는 결국 성패가 모두 한 사람에게 달렸지 않나. 그러니 고 씨가 가는 곳마다 자네 자리를 치고 들어오려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청앵은 간신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천첩과 고 형님은 함께 황상의 시중을 들고 있으니, 누가 누구의 자리를 뺏고 말고 할 것이 있겠사옵니까. 천첩은 있는 것만 못한 사람이오니 고 형님이 응당 가르침을 주셔야지요.”


부찰 씨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가르침이라? 이전에 왕부에 있을 때는 그녀가 감히 자네를 가르쳤던가?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자네 대체 어떻게  처신하는 겐가?


청앵이 듣고 자신도 모르게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마마……”


부찰 씨는 청앵을 잠깐 보고는 다시 이전의 단아하고 어진 표정으로 돌아와 부드럽게 말했다. 

 되었다. 나는 그저 한 마디 하여 자네를 일깨우려던 것 뿐이었네. 일이 이 지경이 된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지.”


부찰 씨는 자부했다. 

 결국 나는 황후이고 황상의 조강지처이니, 자네가 성실히 본분을 지킨다면 나도 고 씨가 다시 자네를 업신여기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야.”


청앵은 이 말을 듣고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망극하옵니다, 마마. 마마께옵서 줄곧 저와 형님을 똑같이 대해 주셨으니 제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마마뿐이옵니다.”


부찰 씨의 눈길이 천천히 청앵의 손목 위에서 움직였다. 청앵의 새하얀 손목 위에 비취 구슬을 금실로 엮은 연화 팔찌 외에 다른 장신구는 없었다. 부찰 씨는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팔목의 이 팔찌는 황상께서 황자이던 시절에 안남국에서 바친 진귀한 물건이라 오로지 이 한 쌍뿐이지. 당시 선제께서 우리 왕부에 하사하셨고,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와 고 씨가 지위가 같으니 바로 자네들에게 하나씩 보낸 것이야. 그런 만큼 자네들은 서로 좋은 마음으로 지내야 하고, 자네들은 잘 알다시피 같은 측복진이니 응당 네 것 내 것 가리지 말고 허물없이 지내며 어떤 일이든 따지고 승강이해서는 아니되느니. 지금 자네는 기꺼이 매일 착용하고 있군 ”


이 팔찌 한 짝은 본래 안남국에서도 매우 희귀한 공물이었다. 안남에서는 좋은 비취가 나지만 이 한 짝에 있는 것은 그 중에서도 정말로 보기 드문 것이다. 알알이 고른 크기의 청록색 비취 구슬 한 줄이 보드랍고 투명하여 윤기가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 희귀한 것은 놀랍게도 잡색 하나 없이 고른데다가, 깊고 깊은 푸른색이 마치 흐르는 맑은 물 같았다. 햇빛에 비춰보면 일렁이는 파도같이 투명한 빛이 나타나 마치 공작의 깃털 같았다. 비취 구슬의 짙은 푸른색을 위해 특별히 금실로 휘감은 꽃잎으로 구슬을 에워싸고, 비취 구슬의 양 끝마다 특별히 연꽃 무늬의 얇은 금박을 둘러 독창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당시 4황자였던 황제는 이 팔찌를 얻고 무척 기뻐하여, 비록 총애하는 신혼의 측복진이 둘 있었지만 적복진 부찰 씨에게 선물했다. 부찰 씨는 황제의 속마음을 헤아려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이것을 바로 청앵과 희월에게 다시 선물한 것이다. 


청앵이 고개를 숙여 팔찌를 만지며 온순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마께서 말씀하신 것이 맞습니다. 마마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마마께서 그 때 분부하셨던 것처럼 늘 패용하며 항상 경계하겠나이다.”


부찰 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군. 고 씨가 매일 끼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 뜻을 항상 기억하는 것은 아닌 듯 싶네.”

부찰 씨는 잠시 멈추었다가, 

 후, 어젯밤 고 씨가 분수에 넘는 짓을 한 것은 내가 모르지 않네. 다만 이제부터는 자네도 양보할 수밖에 없겠네.”


청앵은 어젯밤 해란이 한 말을 떠올리고 막 말하려던 참에 부찰 씨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자네가 오기 전에 황상께서 이미 구두로 명을 내리시기를, 고 씨를 대기(抬旗)하여 양황기[각주:1]로 올리고 고가[각주:2] 성을 내리셨다네. 대청이 개국한 이래 근 백 년 동안 황상께서 친히 대기하시어 이러한 영광을 얻은 것은 고 씨 한 명 뿐일세. 게다가 정황기와 양황기만이 천자의 측근이니, 이번 일의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를 자네도 명백히 헤아릴 수 있겠지.”


청앵은 가슴이 두근거려서 말을 하려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입과 혀가 말을 듣지 않아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예예 하며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부찰 씨는 고개를 돌려 한가롭게 장신구 함에서 한 쌍의 정교한 청옥이 드리워진 귀걸이를 골라 꺼내며 말했다. 

 왕부에 있을 때 자네의 지위는 당연히 고 씨보다 높았는데, 이제 보니 그녀가 결국 자네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군. 후…… 자네 그만 물러가도 좋네.”


청앵은 부찰 씨의 궁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는데 입이 마르고 열이 오르고 지금까지 이처럼 번뇌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전까지는…… 이전에 3황자 홍시에게 거절당하는 치욕을 겪었을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홍시’ 두 글자가 떠오르자 그저 진절머리가 나서 세차게 고개를 젓고는 예심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나갔다.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때때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니 은은하게 선선한 기운이 있었다. 앞에 누군가가 웃고 말하며 다가오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청앵은 미간을 찌푸리고 막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고희월과 김옥연이 매우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김옥연은 청앵을 보고 평소와 같이 반 보 물러나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지만, 고희월은 청앵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아우님은 일찍도 오셨군.”


청앵은 자신의 처지가 이전과 같지 않음을 알고 고희월에게 먼저 평례를 하고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때마침 잘 왔군요. 윗전마마께서 마침 머리를 빗고 세수를 마치셨으니 바로 들어가 보세요.”


희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입궁해서 이제 며칠 되었는데 아우님은 지내는 것이 좀 익숙해지셨는가?” 


청앵이 말했다. 

 형님이 마음을 쓰고 있으니 모든 게 평안합니다.”


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니 다행이군. 아우가 왕부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자다가, 자금성 높은 침대와 큰 베개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밤 중에 혼자 외롭게 깨어 놀라지 않을까 걱정이었다네.”


청앵은 미간을 약간 찡그렸다가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고 형님은 농담도 잘하시네요. 황상께서 선제께 효를 다하느라 요 며칠 양심전에서 지내시는데, 설마 황상께서 형님 곁에 계시겠어요?”


희월은 청앵을 내려다보았다. 

 아우님은 아주 영리하니 이제 맞수를 만나도 되겠구려. 경인궁의 오라나랍 황후는 아마 아우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많을테니 함께 한가로이 여담을 나눌 수 있겠네.”


희월은 청앵의 조금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한 걸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우님은 황태후와 오라나랍 황후 사이에 끼었으니, 총애를 다툴 짬이 있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생각하는 게 낫지 않겠나.”


고희월은 옥연을 향해 손짓하며 매우 다정하게 말했다. 

 게서 뭘 하는 겐가? 어서 같이 들어가지 않구!”


옥연은 “예” 대답하며 청앵을 곁눈질하고는 득의양양하여 희월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에 바람이 불어왔다. 자금성에 부는 9월의 바람은 과연 이렇게 모래와 함께 은은한 한기를 가져와 눈을 흐렸다.

예심은 그들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청앵의 손을 부축하여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며 낮은 목소리로 화를 냈다. 

 월복진은 소주와 같은 신분에 지나지 않는데 소주의 예를 받고도 예를 올리지 않으니 그녀는……”


청앵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날들이 앞으로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이정도 일로 화를 참지 못한다면 그녀와 함께 살았던 요 몇 년이 헛된 것이지.” 

청앵은 한숨을 돌리고는,

 더군다나, 아무래도 그녀는 나보다 몇 살 더 많으니 내가 그녀를 조금은 공경해야 하고, 그녀가 가르치는 것을 들어야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지. 그녀가 정도에 지나치지만 않으면 된다.”


예심이 말을 하려다 멈추자 청앵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


예심은 눈썹을 내리깔고 순한 얼굴로, 

 소주께서는 이리 말씀하시는 것은, 희월 복진 저 분은 우리가 양보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도를 넘지 않으셔야 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청앵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는 일을 꼭 말을 해야 하는 것이냐. 말은 서툴고 행동은 민첩한 것이 너의 장점인데, 어찌 아약과 매한가지로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냐?”


예심은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손을 내밀었다. 

 소인이 잘못하였사옵니다. 소주, 선제의 영전에 예를 올리러 가셔야 하옵니다.”


영전에서 곡하는 이 날, 희월은 당연한 이치라는 듯 청앵의 앞에 꿇어앉아있었다. 부찰 씨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도리어 보통 때에 비해 고 씨에게 더욱 예의를 차렸다. 전각 안의 사람들은 형세를 보아가며 태도를 바꾸는 데 능하였으므로, 일순간에 어제의 놀라고 의아한 감정을 바꾸어 희월을 더더욱 정중하게 대했다. 






진시 삼각[각주:3]이 지나 태비들이 하나하나 전각으로 들어와 새 황제의 비빈들과 함께 좌우 양쪽으로 늘어서서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곡을 했다. 비록 전각 안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눈에 보면 모두 상복에 은장식, 서리같이 하얗고 슬픈 얼굴이었다. 마치 혼령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으며 그 수수한 색의 사람들 중에서도 더 입은 옷이 얇았다.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 태후가 복 상궁의 손을 짚으며 들어왔다. 연일 곡을 했기 때문에 태후의 얼굴빛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태후는 선제의 희귀비요, 줄곧 각별히 총애를 받아 높은 자리에서 편안한 생활을 누렸기 때문에, 보양에 충분히 정성을 들여서 삼십여 세 같아 보였다. 그러나 지금 마음에 슬픔이 있고, 선제의 붕어로 상심하여 며칠 동안 물과 음식을 먹고 마시지 않아 매우 부쩍 초췌해졌다. 그 아름답던 미모가 한 순간에 꽃잎이 말라 떨어진 것 같았다. 


랑화는 태후가 전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예를 올렸다. 태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되었다. 선제를 위해 마음을 다하고 효를 다해야 할 때이니 그렇게 대단하게 법도를 지킬 필요 없다.”


랑화가 “예”하고 바삐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켜 태후를 부축했다. 청앵은 그동안 랑화와 함께 가장 많이 입궁하여 알현하였으므로, 한 걸음 나아가 태후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희월이 청앵을 팔꿈치로 밀며 앞으로 한 발 나아가 태후의 다른 한 손을 부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희월이 부드럽게 말했다.

 태후께서 연일 지치시니 애도하는 마음이 몸을 상하게 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하오니 응당 건강에 유의하셔야 하옵니다.” 


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희월의 손등을 토닥였다. 

 네가 마음을 쓰는구나.”


청앵은 태후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과감하게 고개를 들어 태후를 바라보았다. 이전에 입궁하여 대면하였던 태후는 나중에 들어온 젊은 영빈과 겸빈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총애받는 귀비였고, 아무래도 오랫동안 선황제를 모시며 선제의 마음에 든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빛나고 매끈하게 공들여 화장을 하여 털끝만큼도 느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제 하나하나 살펴보니 역시 세월이 무정하게도 근심은 소리없이 그녀의 피부에 일어났고, 눈썹 꼬리와 눈가에는 세세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연지와 백분을 엺게 바른 태후의 용모는 초췌하고 암담하여, 마치 아무리 좋은 비단도 세월이 오래되면 엷지만 누렇게 세월의 흔적이 물들어 광택과 매끄러움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선제가 세상을 떠나 태후의 화장도 매우 수수했다. 상복인 흰 두루마기 아래로 은빛 비단에 흰 대나무 잎을 수놓은 소복이 가장 은은하고 슬픈 색감을 띄었다. 소매단에는 검정색과 진청색 비단실과 은실로 번갈아 꼼꼼하고 세밀하게 불수화(佛手花)를 수놓았다. 초승달 모양으로 틀어올린 타래 머리에 옥으로 만든 꽃모양 머리 장식의 색과 광택이 광채를 발하여, 한 묶음 검은 머리에 숨겨진 민망초같은 눈에 거슬리는 흰머리를 더욱 부각시키니 다른 사람의 눈에 한 올 한 올 들어왔다.


청앵은 마음이 처연하여 태후와 랑화의 뒤를 따라 영전에 무릎을 꿇고 슬프고 처량하게 곡을 했다. 

영전에서 곡하는 나날은 비록 지치고 힘들었지만, 영전의 촛대를 올리는 일을 맡거나, 금실로 만든 줄로 새하얀 휘장을 묶는 일을 하게 되면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렀다.


점심 수라를 들 무렵이 되자 록균은 삼황자를 낳아 기른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태후는 특별히 록균이 돌아가 삼황자를 돌볼 수 있도록 허락했다. 록균은 대단히 감격하여 곧바로 물러갔다. 희월과 청앵은 랑화를 따라 편전으로 들어가 태후의 점심 수라를 시중들었다. 


태후의 점심 수라는 본래 수강궁으로 돌아가서 해야하는 것이었다. 왕조의 관습에 따르면, 신 황제는 동서 육궁에서 선제의 비빈과 함께 지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선제가 붕어하면 서둘러 육궁의 모든 귀비들 모두 수강궁으로 옮겨보내 각 궁에 배치했다. 태후도 잠시 수강궁 정전에 머물며, 아직 본래 태후만이 기거하는 자녕궁으로 옮기지 않았다. 이 날은 선제의 상례를 행하는 마지막 날이었으므로 태후는 어가를 타고 힘들게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차라리 더 많은 시간을 선제를 위해 슬퍼하며 보내길 원했기 때문에 어선방에 분부하여 점심 수라를 편전으로 옮겨오도록 했다. 


랑화는 본래 정오에 식사하는 시간을 틈타 이황자를 보고 오려던 차였으나, 여기에 태후가 있으니 부모를 모시는 도를 따르려면 그녀도 마음을 다해 시중을 들며 조금의 실수도 해서는 안되었다. 갑자기 수라가 들어와 랑화는 밥을 푸고 희월은 요리를 집어 올렸으며 청앵은 국을 떴다. 시중드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고요하기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태후는 랑화가 옆에서 시중드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이황자가 아직 어린데 너는 어째서 궁으로 돌아가 돌보지 않고 여기 남아서 애가[각주:4]의 시중을 드는 것이냐?”


랑화가 단정하게 웃었다. 

 태후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사온데, 천첩은 후궁의 일을 마음을 다해 살피기 위해 선조의 규범에 따라 이미 2황자를 아가소에 보내 유모들이 돌보게 하였사옵니다.”


태후가 의외인 듯 조금 놀랐다. 

 어찌? 이틀이나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다니, 아이가 아가소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되지 않느냐?”


랑화는 다 받아들여 안심한 듯 평안하고 고요해보였다. 

 왕조의 가법에 의하면, 일단 황자와 공주가 태어나면, 따로 지의가 내려온다면 지위가 낮은 비빈의 처소에서 내보내 높은 비빈이 부양하게 하고, 지의가 없다면 예외 없이 모두 아가소의 유모들이 돌보게 되어있사옵니다. 이는 모자의 정이 지나치게 깊어지지 않게 하고, 안심하고 황상을 시중들며, 다시 황손을 낳아 기를 기회를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옵니다. 천첩이 감히 솔선수범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기에 이황자와 대황자를 보낸 것이옵니다.”


태후는 잠시 정신을 집중하고 느긋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난처하게 되었구나. 이리 말하니 삼황자를 소 씨 곁에서 계속 기르는 것도 적당하지 않구나. 복가, 가서 이르거라, 격격 소 씨에게 명하여 어서 삼황자를 아가소로 보내고 황제를 모시는 데 전념하게 하라.”

복 상궁이 대답하고 분부를 전하러 다녀와, 태후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태후는 수라를 들 때, 항상 먼저 국 한 그릇을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청앵은 식탁 위에 돼지고기 죽순 탕이 있는 것을 보고, 하얀 죽순과 붉은 돼지고기가 금빛 찬란한 국물과 어우러져 구미를 당기기에, 은국자로 한 국자 그릇에 떠 넣고 죽순을 올려 태후의 앞에 놓았다. 


태후는 한 입 마시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할 바 없이 매우 훌륭한 금화의 돼지고기에 죽순을 곁들여 더욱 감칠맛이 나는구나. 이 탕은 감칠맛도 감칠맛이거니와, 죽순도 연하기가 그지 없다. 허나, 감칠맛을 먼저 맛보았으니 나중에 아무리 좋은 채소를 먹어도 아무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태후를 시중드는 나이 많은 노파인 복 상궁이 황망히 웃으며 말했다. 

 태후께서는 줄곧 이 탕을 좋아하셨지요. 허나 연일 선제를 애도하시느라 몸이 상하시어 원래 입맛이 없으셧사옵니다. 이제 

감칠맛을 한 번 맛보셨으니 이 다음 음식은 드시지 못할까 걱정이옵니다.”


청앵은 깜짝 놀라 급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신첩 평소 태후께서 좋아하시던 것만 기억하고 지금 태후마마의 입맛을 알아채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천첩의 과오이옵니다.”


희월이 청앵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냉소를 참지 못하고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할 뿐이었다. 


랑화 또한 말했다. 

 그저 탕뿐이라면 다행이지. 죽순이 비록 연하지만 많이 드시면 위를 상하게 하니 태후께 알맞지 않네.”


태후는 손을 내저으며 권태롭게 말했다. 

 되었다. 너도 효를 다하려 한 것이고, 애가가 입맛이 없을 뿐이다.” 


태후는 상 위에 있는 음식을 흘끗 보고 마지못해 말했다. 

 사람을 불러서 물리거라. 애가는 입맛이 없구나.”


희월은 소리없이 비웃으며 느릿느릿 말했다. 

 아우님의 효심이 넘치시는군. 태후께서 요즘 수척해지셨지만 가까스로 점심 수라를 드시게 되었는데, 방금 탕 한모금으로 아우님이 입맛을 망쳤네. 오늘 오후에도 몇 시진이나 상례를 치뤄야 하는데 아우님은 태후께서 허기진 몸으로 거기 계시게 할 생각인가?”


청앵은 입술을 꽉 깨물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태후께 죄를 청하옵니다. 신첩 한 때의 실수로 태후마마의 봉체를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태후께서 신첩을 벌하시겠다면 아무 원망 않겠사오나, 부디 태후께서는 몸을 보양하시어 조금 더 드시옵소서.”


태후는 마음이 피로하여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랑화가 이를 보고 서둘러 오래 끓여 아주 걸쭉한 죽 한 그릇을 떠 은수저로 저으며 가볍게 불어서 태후의 손에 넘겨주었다. 

 태후께서는 입맛이 없으시더라도 선제를 생각하시어 죽 한 그릇만 드시오소서.”


태후는 눈을 들어 쳐다보다 마지못해 다시 눈을 감고 내키지 않아했다. 

 애가는 입맛이 없대도.”


복 상궁이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윗전마마, 태후께서 요 며칠 입맛이 없으시어 고작 묽은 죽만 조금 드셨사온데, 이렇게 걸쭉한 죽은 정말로 드시지 못하옵니다.”


랑화가 낙심하지 않고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이 죽에 쓴 쌀은 어전(御田)에서 새로 난 것으로, 한 알 한 알이 매우 투명하고 윤기가 나서 먹으면 맛이 살짝 달달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서 걸쭉하게 끓이기 가장 좋은 쌀이라 오히려 입 안에서 사르르 녹사옵니다. 황상께서도 요 며칠 선제의 붕어로 상심하시고, 조정의 일로 바쁘시기에 입맛이 없으셨습니다. 소첩이 어선방에 일러 이런 죽을 만들게 하여 올리니 황상께도 몇 입 드실 수 있었사옵니다.”


태후가 이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너는 황제의 조강지처이니 황제에게 두루 관심을 써서 황제가 애써 일하게 하지 말아야지.”


태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되었다. 황제도 식사를 하려 한다니 애가가 슬퍼도 조금 먹어야지. 좀 맛보자꾸나.”


랑화가 기쁨을 금치 못하며 태후가 두어 입 먹는 것을 보고는 더욱 안심했다. 희월이 정성스럽게 요리를 권하며 될 수 있는 한 담백하고 간단한 반찬을 고르다가 태후가 죽 반 그릇을 모두 마신 것을 보았다. 


랑화가 살며시 웃음기를 띄며 부드럽게 말했다. 

 청앵 아우의 탕은 맛이 좋으니 이런 묽은 죽과 간단한 반찬과 곁들여야 입에 들어가지요. 만약 나중에 먹을 반찬의 맛이 진하면 그때는 정말로 입맛이 상하옵니다.”


태후가 잠시 맛을 음미하더니,

 너희가 마음을 쓰는구나. 다만 애가가 맛을 보니, 이 죽에서 희미하게 생강 맛이 나는 것이, 먹으면 오히려 위가 따뜻하여 

조금 편안해지는구나.”


랑화는 예상 밖의 일이라 잘 알지 못하여 서둘러 뒤에서 시중드는 어선방 태감을 보고 다시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태감이 무릎을 굽히고 몸을 숙이며 대답했다. 

 마마께옵서 분부하신 것은 어전의 햅쌀로 죽을 끓이라는 것이었사오나, 황상께서 지난 밤 위한이 조금 있으셨사옵니다. 청앵 소주께서 아시고 특별히 소인들에게 분부하시어 연한 생강을 조금 죽에 넣어서 위를 따뜻하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황상께서 드시고는 줄곧 좋다 하시었기에 오늘 태후께 올린 죽도 그대로 지어 올린 것이옵니다.” 


태후가 살짝 감탄하여, 

 아가! 이거야말로 제대로 했구나.”


태후는 청앵을 보고 분부했다. 

 밖에서 꿇고, 애가가 있는 이곳에서 또 꿇으니 무릎을 상해 황제가 마음 아파하겠구나. 일어나거라.”


청앵은 이제야 사은하고 일어났다. 태후는 귓가의 은실과 진주로 엮은 봉잠을 매만지며 말했다. 

 애가가 탕을 좀 마셔야겠구나. 네가 애가에게 한 그릇 골라주렴.”


청앵은 감히 다시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세심하게 헤아려 자삼설계탕을 골라 한 그릇을 떠서 태후에게 올렸다. 태후가 이를 보더니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어째서 이 탕을 올린 것이냐?”


청앵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삼은 기운을 차리게 하고 설계는 몸을 보하니 태후의 봉체에 알맞습니다. 또한 선제께서 계실 때에, 신첩이 선제와 태후의 수라를 시중들었사온데, 선제께서 이 탕이 태후께 알맞으니 드시도록 분부하셨사옵니다. 이제 태후께 다시 드시기를 청하오니, 태후께서는 선제의 마음을 헤아리시어 스스로 몸을 보양하시옵소서.”


태후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명주천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선제께서 계실 때, 저 탕을 제일 좋아하시어 늘 말씀하시기를 원기를 회복시키고 기를 보양하니 늘 애가에게 분부하시어 마시게 하시었다. 이제 보니 눈앞의 정경에 마음이 상할 뿐이구나. 하물며 선제께서는 먼저 떠나시고, 탁자를 가득 채운 요리는 반 이상이 고기 비린내 나는 음식이니 애가가 어찌 입에 댈 수 있겠느냐? 되었다, 됐어.”


이 몇 마디 이야기는 수라를 물리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전에 비하면 훨씬 엄중하여, 청앵은 귓가가 지끈지끈하여 불에 덴 것만 같고, 머리가 화끈거리고 아파왔다. 더욱이 수라의 탕이 식을까봐 모두 구리 탕관에 넣고 덥혔다. 청앵은 몹시 뜨거운 탕그릇을 손에 들고 있으니, 처음에는 손가락 끝이 너무 뜨겁고 아팠지만, 점점 감각이 없어졌으며, 탕을 들고 올리지도 물리지도 못한채 매우 난처했다. 


희월은 서둘러 기회를 엿보아 용수채[각주:5]를 한 젓가락 집어 태후의 그릇에 놓고,

 이 용수채로 입가심을 하소서. 태후께서 한 번 맛보시고 간단한 요리도 드시어 선제에 대한 마음을 다하시옵소서.”


태후는 마지못해 한 입 먹고는 랑화와 희월의 손을 잡고 탄식했다. 

 애가도 너희들의 마음을 볼 뿐이다. 사실 먹고 마시는 것에 얼마나 정성이 드느냐? 단지 시기와 형세를 잘 살피고 스스로 총명하다 여겨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청앵을 흘끗 보고는, 

 그래, 아직도 그 탕을 받쳐들고 무얼 하는 것이냐? 생강을 조금 넣은 그 죽이 황제에게는 맞을지 모르나, 애가에게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쓰는 것은 좋으나, 다른 사람에게 올린 것을 여기 있는 사람에게 올려서는 안되는 것이야. 알겠느냐?”


청앵은 자신이 어디서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이유를 알고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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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 장은 기네요, 길어요. 앞으로 (분량때문에) 더 길어지겠지만, 이번 장은 유난히 고구마라 더 길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고구마겠죠. 계황후 오라나랍 씨의 이야기에 사이다가 있긴 한가요...

2. 비문이 있습니다. 전 장에도 없지 않지만, 그때는 문장이 너무 길어서 끊으려다보니 생기는 비문이라면, 이번엔 대놓고 비문이 있습니다. 그 정도가 지금으로서는 옮길 수 있는 최선이라서, 언젠가 원 문장 보다가 무릎을 탁 치는 날이 오면 다시 수정하려고 합니다. 






  1. [역자주] 양황기는 황제 직속으로 청 팔기군의 필두이며 그 중에서도 상3기의 우두머리이다. [본문으로]
  2. [역자주] 한군기를 만군기로 올릴 때, 보통 성에 가(佳) 자를 한 자 덧붙인다고 한다. 만주족 명문가(뉴호록이라던가, 뉴호록이라던가)의 성을 주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한다. [본문으로]
  3. [역자주] 진시는 오전 7~9시, 1각은 약 15분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4. [역자주] 애가(哀家): 황제의 어머니 또는 황후가 남편이 죽은 후에 자신을 일컫는 호칭이다. [본문으로]
  5. [역자주] 아스파라거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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