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 안에서 침수향의 향기가 짙게 퍼져 나와 코를 찌르니, 여의는 조금 놀랐지만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있어도 그 이야기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필사적으로 눌러 참고 있었다. “영련은 정궁 적출 소생이니 황상께서 태자로 세우시는 것도 인정과 도리에 맞는 일이지요.” 황제는 죽을 한 입 먹고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짐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가 적출 소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서출인 아이의 신분은 아무래도 같지 않았다. 설령 이제 황제가 되었다 해도, 한밤 중에 꿈에서 깨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억울하다. 개국 이래로 순치제부터, 강희제, 선제, 그리고 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출이었다. 짐은 정말로 짐의 아들은 그 누구도 트집 잡을 수 없는 귀한 신분의 당당한 적출 소생이었으..
뭇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으니,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외쳤다. “이귀인의 목소리다. 어서 가보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여의는 잠시 마음이 조급하여 즉시 데려온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고나서 난각에 들어가보니, 이귀인이 겁에 질려 난각에 있는 자주빛 배꽃과 덩굴 문양의 미인탑(美人榻, 고대의 여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던 좁고 긴 의자)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여의가 “이귀인”하고 부르자, 이귀인은 대경실색하여 새하얀 얼굴이 검푸르게 물들며 바닥에 있는 수놓인 담요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저 좀 살려주세요! 한비마마, 빨리 저 좀 살려주세요!” 여의는 시선이 바닥에 닿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뒷걸음질 칠 뻔 ..
황제는 혜귀비를 보며 다소 무관심한 듯 거리를 두었다. “됐다. 짐이 이미 왕흠을 처리했으니, 그대도 그만 울거라. 먼저 궁으로 돌아가보아라.” 혜귀비는 마음 속이 억울함으로 가득하여 무어라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황제는 그토록 냉담하고 소원한 말투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짐이 다시 그대를 보러 갈 것이니, 돌아가보라.” 혜귀비는 하는 수없이 아쉬워하며 물러나올 뿐이었다. 여의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연심을 보며 말했다. “황상, 이 일은 왕흠에게 큰 죄가 있는 것이고 연심은 죄없이 피해를 당했을 뿐이옵니다. 누가 왕흠과의 대식을 하사받든, 이런 운명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사옵니다. 황상께서는 연심이 황후마마를 오래 모셔온 것을 보아 연심을 더는 벌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
매귀인이 총애를 잃은 것은 이미 정해진 것 과도 같았다. 낳은 것이 그토록 불길한 ‘죽은 아이’였기 때문에, 출산 전의 총애는 그녀가 출산한 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어떠한 위로도 없고, 단 한 번의 병문안도 없고, 그동안 꽃과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화려했던 영화궁은 이렇게 적막해져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가장 어질고 총명한 황후마저도 놀라서 피하며 다시 가지 않았다. 황후는 만나서 감정 상할 것을 두려워하여 매귀인이 영화궁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몸조리가 끝난 후에는 편전에서 복을 빌던 법사마저도 보화전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오직 적막한 바람과 눈 내리는 소리만이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슬픈 매귀인과 함께 할 뿐이었다. 며칠간 보기 드문 맑은 날씨에 또 초열흘이 돌아와 ..
황제는 몸을 일으켜 동난각으로 갔다. "짐이 항상 보던 를 가지고 오거라. 가서 책을 잠깐 볼 것이다. 그대가 세수와 양치를 마치고 오면 다시 그대와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여의가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예.” 아약도 여의에게 뜨거운 물 한 대야를 따라주었다. 서난각의 등불이 환하여, 아약의 기쁨에 겨운 얼굴이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이니 마치 복숭아 꽃 같았다. 여의가 웃으며 아약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얼른 희희낙락한 얼굴을 감추거라. 황상께서 보시면 네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덤벙댄다고 생각하실 게야.” 아약은 얼굴을 더듬으며 부끄러워했다. "안 숨겨져요?" 여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하지만 기억하거라. 네 아비가 심혈을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전도유망할 것이고, 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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