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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귀인이 총애를 잃은 것은 이미 정해진 것 과도 같았다. 낳은 것이 그토록 불길한 ‘죽은 아이’였기 때문에, 출산 전의 총애는 그녀가 출산한 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어떠한 위로도 없고, 단 한 번의 병문안도 없고, 그동안 꽃과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화려했던 영화궁은 이렇게 적막해져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가장 어질고 총명한 황후마저도 놀라서 피하며 다시 가지 않았다.

 

황후는 만나서 감정 상할 것을 두려워하여 매귀인이 영화궁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몸조리가 끝난 후에는 편전에서 복을 빌던 법사마저도 보화전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오직 적막한 바람과 눈 내리는 소리만이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슬픈 매귀인과 함께 할 뿐이었다.

 

며칠간 보기 드문 맑은 날씨에 또 초열흘이 돌아와 궁중의 비빈들은 황제와 황후를 따라 함께 자녕궁에 문안을 올리러 갔다. 태후는 수많은 비빈들이 전각을 가득 채우고 앉아있는 것을 보고 살짝 미소 띤 얼굴을 보이며 턱을 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은 진눈깨비가 끊임없이 내려서 너희들이 문안하러 오가는 것을 면했다. 오늘은 황제와 황후가 마음을 써서 너희들을 데리고 함께 왔구나.”

 

뭇 사람들이 말했다.
 “태후께 문안을 올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신첩 등의 영광이옵니다.”

 

태후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제 복가와 함께 어화원을 산책하며 맑은 날씨의 홍매화를 감상했다. 허나 홍매화가 만개한 것을 어디 너희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에 비하겠느냐. 애가뿐만 아니라 황제가 보기에도 눈과 마음이 즐거울 것이니라. 황제, 아니 그렇소?”

 

황제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마마마의 말씀이 옳사옵니다.”

 

태후는 옷섶에 드리운 진주 술 장식을 가지런히 정돈하며 느릿느릿 말했다.
 “온갖 꽃이 만발하니, 언뜻 보면 어느 한 송이가 빠져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구나. 허나 그 온갖 꽃에 익숙한 사람은 어느 한 송이가 부족한 것을 늦봄의 아름다운 정경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 황제, 애가가 늙어 말이 많아졌구려. 매귀인은 이미 몸조리가 끝났는데 어찌 애가에게 문안을 올리러 나오지 않은 것이오?”

 

황제가 미간에 조금 침울한 기색을 보이니 황후가 서둘러 공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매귀인이 상심하고 실의에 빠져 있어서 소첩이 잘 요양하라 하였사옵니다.”

 

 “너무 상심하는 것도 매귀인의 잘못이지.”
태후는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태도를 바로잡으며 정색하여 말했다.
 “비빈들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도 중요하지만 황제를 모시는 것이 더욱더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너희가 낳은 자식을 아가소에 맡기거나 지위가 높은 비빈들에게 양육하게 하는 선조들의 법도가 있는 이유인 것이다. 너희들이 아이에게만 마음을 쓰고 황제를 소홀히 할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니라.”
태후는 황제를 흘끗 보고는 무척 정답게 말했다.
 “매귀인에게 황손을 낳고 기를 복이 없는 것이니, 황제는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황제는 아직 젊고, 황후와 비빈들 역시 젊은 데다 매귀인도 다시 아이를 낳을 기회가 있을 것이니 절대로 한때의 상심이 지나쳐서 옥체를 상하게 하지 마시오.”

 

황제가 급히 일어났다.
 “소자, 어마마마의 배려에 감사드리옵니다.”

 

태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미의 배려도 말로 하는 것이니, 황제 스스로 마음을 잘 추스려야 하오. 애가가 보기에 그동안 적잖이 수척해지고 눈밑도 어두워진 것 같소. 황제가 이렇게 늘 울적해하니 애가도 보면서 애가 탄다오.”
태후의 말투에 불만족스러움이 조금 비쳤다.
 “황후, 듣자하니 그동안 황후가 자주 황제를 모셨는데 어찌 아직도 성심을 풀어드리고 위로하지 못한 것이오? 황후는 육궁의 주인이니 궁중의 자질구레한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황제의 모든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오. 황후는 절대 경중을 분별하지 못해선 아니 되오!”

 

이 한마디가 무척 엄중했으니, 황후는 조금 두려운 기색을 보였다.
 “어마마마, 용서해주시옵소서. 소첩이 무능하여 황상께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셨사옵니다. 그래서 그동안 각 궁의 비빈들이 모시도록 안배하였사옵니다. 한비와 혜귀비도 자주 황상을 모시고 있으니, 어마마마께서 믿지 못하시오면 내무부에 기록을 가져오게 하여 조사해보시옵소서.”

 

여의와 희월이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황태후께서는 평안하시옵소서. 신첩들은 분명 황후의 명을 받자와 황상을 모시고 있사옵니다.”

 

태후는 손에 든 자줏빛 옥여의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황제가 등극한 이후로 새로운 사람들을 몇 들였지만 가장 성심을 얻은 것은 매귀인뿐이었다. 사실 사산하면 또 어떤가. 빨리 몸을 잘 추슬러서 아이를 가지면 황제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야.”

 

황제는 황후와 눈을 마주치고 다시 여의를 보더니 곧 고개를 숙였다. 황후가 고개를 들고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은 소첩이 줄곧 비빈들에게 황상 곁에서 시중들도록 안배하면서, 마찬가지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사옵니다.”
황후는 웃으며 무릎을 굽혀 태후와 황제에게 예를 올렸다.
 “경하드리옵니다, 태후. 경하드리옵니다, 황상. 매귀인의 뒤를 이어 이귀인이 회임 한지 한 달이 조금 넘었사옵니다.”

 

황제는 조금 놀랐다가 오래지 않아 크게 기뻐하며 황후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황후의 말이 사실이오?”

 

황후의 미소가 봄바람처럼 따사로웠다.
 “아이는 틀림없이 이귀인의 복중에 있사오니, 신첩이 어찌 감히 터무니없는 말씀을 올리겠나이까. 게다가 신첩이 경사방의 기록을 찾아보니 분명 한 달 조금 전에 승은을 입어 회임한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하늘이 이와 같이 안배한 것은 분명 한 곳에서 잃은 것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는 것을 알도록 특별히 이귀인에게 황손을 회임케 한 것이옵니다.”

 

이귀인은 온 얼굴에 홍조를 띠며 일어나 말했다.
 “신첩, 황상과 황후의 복과 은혜를 크게 입었사오니, 황후마마께서는 착오가 있을까 걱정하시어 특별히 태의 서넛을 불러 진맥 하게 하셨사옵니다. 신첩 확실히 황손을 회임했사옵니다.”

 

여의는 가슴속에서부터 목구멍과 혀 아래까지 몹시 시큰거림을 느꼈다. 허나 그런 쓰라림은 그녀가 어떻게 느낄지는 아랑곳 않고 강제로 아무 거리낌 없이 퍼져나가 오장육부로 기어들었다. 여의는 무의식 중에 자기 아랫배를 누르고 있었으니, 그곳은 그렇듯 평탄했다. 그녀는 그렇게 복이 없고 자신의 아이가 없다. 아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더욱 괴로운 사람은 어쩌면 딸을 잃은 고통이 뼈에 사무친 채로 이귀인이 회임한 기쁨을 누리며 지난날 자신의 근심과 기쁨을 하나하나 겪고 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영화궁에 유폐된 매귀인일 것이다.

 

황제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태후를 향해 말했다.
 “어마마마, 어마마마......”

 

태후의 미소는 여전히 담담했으니, 몽롱한 달빛에 비치는 어렴풋이 날아가는 새와 그 위에 걸린 옅고 흐린 안개구름처럼 항상 애매하게 덮여서, 그 미소 뒤의 진정한 의미를 분명히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 게다가 이귀인은 이전에 황후를 모시던 사람이라 내막을 잘 알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구나.”
태후는 복 상궁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침 내내 이야기를 했더니 피곤하구나. 먼저 가서 쉬어야겠다. 너희는 더 앉았다가 각자 알아서들 돌아가 보거라.”

 

사람들은 태후가 침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배웅했다.

 

황후는 이귀인의 배를 보며 무척 기뻐했다.
 “후궁은 천하의 가장 중한 일을 맡고 있으니, 바로 황가의 자손이 번창하고 복과 은혜가 무궁하게 하는 것이야. 대청의 후손이 만대에 이르는 것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네들의 복중에 있는 것이지. 만일 모두 이귀인 같을 수만 있다면 본궁은 꿈이라 해도 웃으며 깨어날 수 있을 것이야.”
황후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소심, 연심, 오늘 밤 물건을 정리해두거라. 본궁은 보화전에 가서 향을 올리고 복을 빌며 하늘의 은혜에 감사를 표할 것이야.”

 

황제는 기쁘고 안심이 되어 황후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말했다.
 “황후가 수고가 많소.”

 

 “황상께서는 어찌 그리 말씀하시옵니까?”
황후가 웃으며 눈을 흘겼다.
 “비빈들이 자손을 낳고 기르면 그들은 당연히 아이의 생모가 되지만 신첩은 아이들의 적모(嫡母)가 되오니, 어미가 되는 것은 매한가지이옵니다. 이렇게 기뻐하는 것은 비빈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첩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옵니다.”

 

황제는 제법 감격하여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황후가 어질고 지혜롭구려.”

 

황후는 아랫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신첩 황상께 아뢰려던 일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사실 비빈들 중에 혜귀비와 한비의 지위가 가장 높고 황상을 모신 지 오래되었사온데......”

 

여의는 자신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놀라 황후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 때 혜귀비와 우연히 눈빛을 마주쳤는데, 서로 재빨리 눈을 피하고는 곧 고개를 돌려 각자 아주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황후는 웃으며 눈에는 더없이 따사롭고 다정한 빛을 띠고 그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사실 귀비와 한비뿐만 아니라 해귀인과 가귀인도 아이를 낳아 키워본 적이 없사옵니다. 신첩이 생각하기에, 태의원에 회임을 촉진하는 처방을 내게 하고 각 궁의 비빈들이 복용하게 하여 일찌감치 회임하도록 하면 궁중도 좀 더 시끌벅적해질 것이옵니다.”

 

황제는 기쁘고 안심하여 말했다.
 “그렇다면 황후가 마음 써주시오.”

 

이렇게 한담 몇 마디가 오가고 나서 각자 흩어져 돌아갔다. 황제는 이귀인의 회임을 각별히 중시하여, 황후가 직접 이귀인을 경양궁으로 배웅하게 하고 자신은 양심전으로 돌아갔다.

 

여의와 희월은 자녕궁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희월은 자조하는 웃음을 지으며 모처럼 아무런 적의 없이 쓸쓸하게 말했다.
 “이귀인은 그동안 은총이 많지 않았고, 황상께서 한 달 동안 이귀인 처소에 한 번 가셨을 뿐인데 뜻밖에도 회임을 했군. 본궁과 한비 자네는 어쩌다가 황후께 회임 약을 청해서 자식을 얻을 지경이 되었는지.”

 

여의도 자못 상심하였으니, 새끼손가락에 낀 은과 순금에 작은 진주를 박아 넣은 호갑이 손바닥에서 얼음처럼 차갑고 여지없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여의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운이 들어오지 않으니, 황상께서 아무리 많이 오셔도 우리에게는 그런 복이 없는 게지요.”

 

희월이 침울하게 웃었다.
 “이전에 잠저에 있을 때는 자네의 집안이 본궁보다 좋았고 은총도 본궁보다 많았지. 이제 궁에 들어와서는 하나하나 빠져나가는군. 본궁이 비록 자네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 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본궁이 자네와 마찬가지로 슬하에 자식이 없어 힘들다는 것이네.”
희월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렸다.
 “본궁과 자네 슬하에 자식이 없는 건 그렇다 치지만, 매귀인이 회임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매귀인이 건강하다 했고, 비록 잔병치레가 있었지만 한갓 입가에 난 궤양 같은 작은 일일 뿐이지 않았나. 태의도 회임한 것이 아들이라 했는데, 태어난 것이 공주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찌 죽어서 태어난단 말인가? 죽은 아이도 죽은 아이 나름이지. 하필이면 황상께서 아직도 응어리가 남아 한 달이 다 되도록 한 번을 보러 가시질 않는가 말이야!”

 

여의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상의 성심이 어디 형님과 제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인가요.”

 

희월은 한 가닥 은밀한 미소를 띠며 손짓으로 뒤따르는 궁인들을 물러가게 하고는 여의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듣자 하니 매귀인의 아이가 그저 죽은 아이라고 그렇게 간단히 말할 게 아니라던데. 그날 밤 자네도 영화궁에 있었는데 설마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여의는 가슴이 살짝 서늘해졌지만 오히려 입가에는 적당히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이상한 점이 있었겠어요. 황상께서 그 아이를 직접 보시고는 상심하셨던 것일 뿐이지요.”

 

 “아무리 상심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흐릿해지게 마련이고, 옛정까지 더해지면 황상께서 아무리 매귀인에게 맺힌 마음이 있다 하여도 이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야. 분명히 중간에 다른 연고가 있었던 것이 분명해. 아니 그런가?”

 

밝고 따뜻한 햇빛이 마치 금가루같이 작게 부서지며 하나씩 몸에 떨어져 내리며 반짝이는 빛무리에 물들었지만, 여의는 털끝만큼의 따스함도 느껴지지 않았고, 몸속 깊은 곳에서 퍼져 나가는 서늘한 느낌은 가닥가닥 스며들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여의가 천천히 말했다.
 “무슨 다른 연고가 있겠어요. 옛사랑은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 이귀인이 회임하여 황상의 정이 옮겨간 뒤 매귀인은 더욱 냉대를 받게 되었을 뿐이지요.”

 

여의의 말은 거짓은 아니었다. 그녀의 연희궁은 영화궁 바로 앞에 있었으니, 항상 지나면서 그물을 놓아 참새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찾아오는 이 없이 쓸쓸한 것을 보며, 안에서 매분 매초 적막하고 고독한 시간을 얼마나 힘들게 견디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나날들을 그녀도 견뎌본 적 없는 것이 아니었다. 군주의 은혜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아서, 총애를 받으면 근심이 떠나가고 총애를 잃으면 처량해졌다. 궁중의 여인이 하루하루를 보내며 이렇게 고통스럽게 견디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희월은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헌데 본궁이 어쩌다 듣기로, 황상께서 보화전의 대사에게 명하시어 영화궁에서 한 달 넘도록 경을 읽고 복을 빈 것이, 매귀인이 낳은 아이가 바로 괴이하고 불길한 징조이기 때문이란 것이야!”

 

여의는 급히 말하지 말라는 눈짓을 했으니, 표정은 담담하고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귀비마마, 궁 안은 다른 곳과 같지 않으니 이런 말씀은 말해서도 전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옵니다.”

 

희월은 웃는 얼굴을 거두고 차갑게 비웃었다.
 “이런 말이 어찌 본궁뿐이겠는가. 온 궁에 나돌아 다니고 있단 말이네! 지금 걱정되는 것은 매귀인이 궁에 틀어박혀 있지만 조만간 알게 될 거라는 것이야.”

 

여의는 가슴속이 서늘해졌다.
 “온 궁중에 다 퍼졌다고요?”

 

희월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가? 누가 누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못 믿겠으면 직접 가서 들어보면 알 것이야.”
희월은 말을 마치고 궁녀를 불러서 함께 돌아가버렸다.

 

궁중의 근거 없는 소문은 언제나 어둡고 음침한 구석에서 돌아다니는 뱀이나 쥐, 벌레보다도 더 많은 법이었다. 궁궐의 붉은 담장과 푸른 기와 아래의 모퉁이 구석구석에 숨겨져서, 몰래 숨어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숙덕거리며 꿈틀꿈틀 퍼져 나갔다. 아궁이의 쥐가 바스락거리는 것같이, 담장 위의 잡초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이, 귀에서 귀로 꼬리를 물고, 좋은 말과 흉한 말이 오가고, 예외 없이 이로 물고 혀로 핥으며 이리저리 씹고 뜯고 들은 것을 다시 게워냈다. 작은 것에 말을 보태고 부풀리는 것만 있을 뿐, 말을 삼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러한 것이 바로 후궁의 뒷말이었으니, 하루도 끊이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자라나는 봄날의 잡초처럼 끝없이 퍼져 나갔다. 이 뒷소문이 파란만장하게 오가는 가운데, 큰 물결을 일으키며 거대한 바위를 던진 것은 매귀인이 목을 매단 일이었다.

 

한 달 넘게 굳게 닫혀있던 영화궁의 대문이 다시 열렸다. 여의가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낮잠에서 깨어나 차를 마시며 간식을 먹을 무렵이었다. 아약이 와서 고할 때, 여의는 무척 놀라서 손에 든 맑은 차 한 잔을 모두 쏟아버리고는 다급하게 아약과 쇄심의 손에 부축을 받으며 영화궁으로 갔다.

 

여의가 서둘러 도착했을 때에는 황제와 황후도 이미 와 있었다. 여의는 문안을 올리고 나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매귀인은 황후를 모시는 소심과 연심에게 붙잡힌 채로 침대 위에 앉아서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황제는 화가 난 와중에도 조금은 마음이 아팠지만 말투는 무척 매서웠다.
 “궁중의 비빈이 자진하는 것은 대죄다. 너는 뭐가 그리 고까워서 감히 자금성 안에서 목을 맨 것이냐? 궁에 불운을 보태는 것이 두렵지도 않느냐!”

 

매귀인은 흰색 바탕에 은실로 개나리 가지를 수놓아 장식한 적삼만을 입고 겉에는 다람쥐 털을 두른 청남색 외투를 걸쳤으니, 그 청색과 수수한 흰색을 바탕으로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눈처럼 새하얀 목 언저리에 남아있는 짙은 자줏빛의 목졸린 흔적이 애처롭고 가련하게 그녀가 방금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 돌아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매귀인은 흐느껴 울었다.
 “신첩은 본래부터 불길한 사람이니 무슨 드릴 말씀이 있겠사옵니까. 황상께서 신첩에게 노여워하시니, 신첩이 마음대로 죽게 두시면 될 일이옵니다.”

 

황제는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렸고, 황후 또한 노기를 참지 못했다.
 “아무리 돌봐야 할 가족이 없어서 연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그렇지. 허나 황상께서 어디 자네를 아끼지 않으신다고 스스로를 멸시하고 천대하여 쉽게 목숨을 내버리니, 이 어찌 황상께서 그간 자네에게 베푸셨던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매귀인은 더욱 처량하게 숨죽여 울었다.
 “신첩은 그저 황상께 송구스러울 따름이옵니다. 신첩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고 다시 황상을 모실 면목도 없사옵니다!”

 

황후는 한가득 꿇어앉아 있는 궁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그렇지. 매귀인을 잘 모시지 못하고 이렇게 상심하여 이런 난리를 피우게 했으니, 본궁이 너희를 엄히 다스려야겠다.”

 

궁인들이 놀라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말했다.
 “황후마마 용서해주시옵소서! 황후마마 용서해주시옵소서! 소인들도 무슨 일이 있어서 귀인이 이렇게 감정이 격해지셨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그중에 앞에 있는 궁녀 하나가 울면서 말했다.
 “요 며칠 귀인께서 계속 마음이 불안하시어 밤중에도 악몽을 꾸시고 전혀 잘 주무시지 못했사옵니다! 오늘 오후에 소주께서는 본래 낮잠을 주무셔야 했는데, 소주께서 소인들이 시중들지 못하게 하시고 다 내쫓아버리셨사옵니다. 소인들이 밖에서 귀 기울여 들으며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는데 또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되어 뛰어 들어가 보니 귀인 소주께서 끝내 스스로 대들보에 목을 매셨사옵니다!”

 

여의가 급히 물었다.
 “그러면 너희 소주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이냐? 아이의 일 때문인 것이냐?”

 

그 궁녀는 벌벌 떨며 고개를 젓고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

 

황제는 화가 치밀어서 연거푸 물었다.
 “너는 무엇이 그리 납득할 수 없는지 짐과 황후에게 다 말해보라. 그렇지 않으면 한비와 네가 그리 가까우니 한비에게 말해도 된다.”

 

매귀인이 울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신첩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뭔가 알게 될까 봐 두려워하시지 않사옵니까? 그래서 황후마마께서 신첩을 여기 영화궁에 가두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신 것이지요. 신첩은 지위가 낮아서 무시되고, 팔자도 박복하기가 종잇장과 같음을 알고 있사온데, 대들보에 목을 매는 것 말고는 또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이옵니까?”

 

황제는 손에 든 찻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터무니없구나!”

 

여의는 급히 찻잔을 받아 입으로 후후 불며 말했다.
 “찻잔이 너무 뜨거우니 황상께서는 손을 데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황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말하려는데 침전 문 어귀에 살구빛 붉은색의 홑옷과 얇고 푸른 명주가 어른거렸으니, 혜귀비가 아름다운 자태로 그곳에 서있었다. 혜귀비는 궁녀의 시중을 받아 외투를 벗고는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첩이 매귀인이라면 그런 뒷소문을 듣고 마찬가지로 마음에 담아두었을 것이옵니다. 멀쩡하던 아이가 죽은 것은 그렇다 쳐도, 그 아이가 남녀를 구분할 수 없는 괴이하고 불길한 아이라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어미가 그런 말을 감당할 수 있겠사옵니까.”

 

황제는 안색이 크게 변하여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대는 어디서 그런 황당무계한 말을 듣고 여기까지 달려와서 말하는 것인가?”

 

혜귀비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방긋 웃으며 예를 올리고는 말했다.
 “신첩도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이온데, 궁중에서 누군가 사사로이 이리 전했겠지요.”

 

매귀인은 처절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며 울더니 침상에서 발버둥 치며 일어나 무릎걸음으로 황제 앞까지 다가와 용포 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황상, 신첩에게 사실을 말씀해주시옵소서. 신첩의 아이가 정말로 괴이하고 불길한 징조이옵니까? 황자인지 공주인지도 구분 못할 요물인 것이옵니까? 그래서 황상께서 신첩을 이렇게까지 싫어하시고 꼬박 한 달이 넘도록 신첩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신 것이군요!”

 

황제는 가까스로 한 줄기 미소를 쥐어짜내며 말했다.
 “바깥의 험담을 함부로 듣지 마라! 짐이 너를 보러 가지 않은 것은 네가 안심하고 몸조리를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매귀인이 슬프게 흐느끼며 말했다.
 “신첩이 어떻게 몸조리를 할 수 있겠사옵니까? 비록 신첩이 영화궁에 은거하고 있지만 담장 밖에 오가는 소문은 들을 수 있사옵니다. 어쩐지 황상께서 그 아이를 신첩에게 보이지도 않으시고 보내버리시더니, 신첩이 낳은 것이 정말로 요물이었기 때문이군요!”

 

황제는 조금 초조하여 외쳤다.
 “왕흠!”

 

왕흠이 서둘러 밖에서 들어오며 말했다.
 “황상, 소인 대령하였사옵니다.”

 

황제가 차갑게 말했다.
 “너는 가서 도대체 누가 매귀인이 낳은 아이가 요물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는지 철저히 조사해라. 일단 찾아내면 어느 궁의 누구이든지 간에 즉시 신형사로 보내고 평생 나오지 못하게 해라.”
이렇게 말하는 황제의 말투는 차가웠지만 눈빛은 더더욱 날카롭게 왕흠의 얼굴을 훑으며 옥죄어왔으니, 왕흠은 얼굴에 식은땀이 배어나오며 급히 이마를 땅에 조아리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안심하시옵소서. 소인 주변에는 이런 유언비어를 흘릴 사람이 절대 없사옵고, 그런 소문을 들은 사람도 없을 것이오며, 소인이 즉시 조사하겠사옵니다.”

 

황제가 가볍게 “응” 하고는 말했다.
 “매귀인, 다른 사람이 이렇게 넘겨짚고 헛소문을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허나 너는 아이를 낳은 어미인데 네가 만일 이렇게 의심하고 그것 때문에 죽겠다 한다면, 너 스스로도 자기 자식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짐은 다른 말 않겠다. 네가 또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하면 누구도 너를 구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아이를 바꿀 수도 없을 것이다!”

 

황제는 두말없이 일어나서 나가다가 정원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혜귀비가 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황상, 신첩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사옵니다.”

 

황제가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혜귀비가 예를 올리고는 말했다.
 “신첩이 걱정하는 것은, 매귀인이 낳은 아이가 무엇이든, 설령 죽은 아이라 할 지라도 불길하다는 것이옵니다. 게다가 매귀인도 이렇게 죽느니 사느니 소란을 피우는 것이 뭔가를 건드리게 될까 두렵사옵니다. 이제 이귀인이 회임한 데다가 영화궁 뒤편에 거하고 있으니, 만일 이 불길한 사람과 일에 영향을 받아서 다시 복중 태아에 미치게 된다면 그건 좋지 않사옵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럼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혜귀비가 말했다.
 “황상께서는 자손이 많으시고 모두 무탈한데, 오직 매귀인의 아이에게만 일이 생긴 것은 곧 매귀인이 불길한 것이옵니다. 이렇게 불길한 자를 궁중에 두는 것 보다는, 차라리 매귀인을 궁 밖 별원으로 옮기시고 다시는 자금성에서 살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낫사옵니다.”

 

황제는 담담하게 “아” 하고 말했다.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인가? 짐은 본래, 법사 몇몇을 불러 죽은 아이의 영혼을 제도하고 난 후에 매귀인의 유폐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혜귀비가 고개를 저으며 정색하며 말했다.
 “신첩, 다른 것은 감히 말씀 올리지 못하오나, 매귀인이 낳은 것이 죽은 아이든 재앙이든 상관없사옵니다. 황손을 중히 여겨야 하니, 만일 매귀인의 불운이 옮겨와서 궁중에 이런 아이가 또 생겨난다면 어찌한단 말이옵니까? 대청 백년의 복과 상서로움이 설마 머잖아 매귀인의 손에 끊어진단 말이옵니까?”

 

여의가 마침 황후를 따라 나오다가 이 말을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황후는 여의의 손을 붙잡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여의는 마음속에서 근심이 끊이지 않아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매귀인은 침전 깊은 곳에서 우울하고 애처로운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황제는 여전히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말을 하다 말지 말고 끝까지 다 말해보거라.”

 

 “매귀인이 불길하여 천자의 승은을 입고서도 그런 아이를 낳은 것이옵니다. 이렇게 음험하고 흉악한 화근은 절대로 남겨두어서는 아니되옵니다. 신첩이 생각하기에, 어차피 매귀인도 스스로 목맬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니, 매귀인의 바람을 들어주시어 그 아이를 따라 가게 하시는 것도 덕을 쌓는 일일 것이옵니다.”
혜귀비는 황제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황제의 표정을 살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 아이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황상께서 직접 보셨잖습니까. 그런 아이는 궁중에 절대로 다시 있어서는 아니되옵니다.”

 

황제의 몸이 가늘게 떨렸으니, 혜귀비의 말에 마음속 깊숙이 느껴진 것이 있는 듯 이내 깊은 침묵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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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스토리 새로 바낀 에디터 좋네요ㅎㅎ 다만 각주 기능이 없....는 것 같아서 다음에 각주 달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됩니다...

2. 2권 들어서면서 한 화당 분량이 꾸준히 A4 10장을 가뿐히 넘어가는데, 분량을 반으로 쪼개서 올릴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큰 계기가 없는 한 지금처럼 한번에 한 장씩 올리는 걸 기본으로 할까 합니다.

3. (하나하나 답은 못달아드려도) 댓글과 좋아요는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드문드문 올리는데도 찾아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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