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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으니,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외쳤다.
 “이귀인의 목소리다. 어서 가보지 않고 무얼 하는 게냐!”

 

여의는 잠시 마음이 조급하여 즉시 데려온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고나서 난각에 들어가보니, 이귀인이 겁에 질려 난각에 있는 자주빛 배꽃과 덩굴 문양의 미인탑(美人榻, 고대의 여인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사용하던 좁고 긴 의자)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여의가 “이귀인”하고 부르자, 이귀인은 대경실색하여 새하얀 얼굴이 검푸르게 물들며 바닥에 있는 수놓인 담요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저 좀 살려주세요! 한비마마, 빨리 저 좀 살려주세요!”

 

여의는 시선이 바닥에 닿자 깜짝 놀라 하마터면 뒷걸음질 칠 뻔 했고, 궁인들도 놀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 수놓인 담요 위에는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잿빛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쉭쉭거리며 선홍색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바닥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태감 하나가 놀라서 소리쳤다.
 “앗! 저것은 살무사이옵니다. 독이 있는 놈이옵니다! 독이 있사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열 몇 발자국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고, 이귀인은 그 뱀이 갈 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하마터면 혼절할 뻔했다. 여의는 몹시 당황하여 어쩔 줄 몰랐지만, 그 뱀이 이귀인에게 조금씩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더욱 더 두려워했다. 만일 이귀인 복중의 태아를 다치게 한다면, 차츰 기분이 나아지던 황제가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여의는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곁에 있는 소태감에게 말했다.
 “너희 궁에 웅황분(雄黄粉, 천연으로 나는 비소 화합물)이 있느냐?”

 

그 소태감이 부랴부랴 대답했다.
 “있사옵니다, 있사옵니다! 궁중에 항상 구비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여의는 서둘러 그 태감에게 웅황분을 가져오라 분부하고 뱀에게 뿌려서 쫓아내게 했다. 그 뱀은 갑자기 웅황을 뒤집어쓰고 일순간 동작이 조금 느려지자, 여의는 급히 손을 뻗어 푸른 방충망을 친 찬장 옆에 있는 궁인들이 청소할 때 쓰는 먼지떨이를 가져다 그 뱀을 거칠게 들어올려 문가를 향해 내던지고는 즉시 말했다.
 “어서 사람을 불러 큰 돌을 가져와 뱀의 급소를 짓눌러라. 반드시 눌러 죽여야만 한다.”

 

놀라서 얼어붙어 있던 태감들은 여의가 이렇게 분부하는 것을 듣고 급히 웅황분을 잔뜩 가져다 뿌리고, 돌을 찾아 뱀을 찍어 눌렀고 오래지 않아 뱀을 처리했다.

 

이귀인은 멍하니 여의를 바라보다가 곧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창백해진 얼굴로 여의의 품에 달려들었다.
 “한비마마, 한비마마, 빈첩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의는 급히 비단으로 이귀인을 감싸 침전으로 데리고 들어가 눕히고 나서 비로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게야? 어째서 갑자기 자네 난각 안에 독사가 있는 것인가?”

 

이귀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빈첩은 좀 피곤한 것 같아서 난각에서 쉬려고 했고, 곁에서 시중 들던 자들은 모두 물렸사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대들보에서 뱀 한 마리가 떨어졌고, 빈첩이 놀라서 곧장 소리를 질렀던 것이옵니다.”

 

여의는 이귀인의 가슴께를 쓸어주며 자신도 놀란 마음을 그제서야 가라앉혔다.
 “그 살무사는 독이 있는 것이니, 만일 물리기라도 했으면 자네 뿐만 아니라 자네 복중의 아이까지 있으니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야. 허나 느닷없이 궁중에 어찌 독사가 있는 것이냐?”

 

아약은 이귀인의 차를 받쳐들고 오며 말했다.
 “귀인께서는 차를 드시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셔요. 오늘은 경칩이니, 아무래도 뱀이나 벌레나 개미가 모두 다 기어 나옵니다. 귀인께서는 회임하시어 추위를 타시지만, 궁은 지렁이가 나올 만큼 유난히 따뜻하니, 아무래도 이게 뱀을 불러들인 것도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귀인은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려서, 찻잔의 차를 모두 여의에게 쏟아버리고 말았다. 여의가 옷에 쏟아진 차를 닦아낼 새도 없이 이귀인은 한 손으로 여의의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몸을 웅크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배를 감싸 쥐고 외쳤다.
 “아파! 배가 너무 아파요!”

 

황제와 황후가 서둘러 왔을 때, 태의는 벌써 이귀인의 유산을 방지하는 처방을 쓰고 있었다. 경양궁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워했고, 여의는 잠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궁인들에게 태의를 불러 약을 달이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태감들에게 명하여 담장 밑과 구석에 웅황분과 석회를 뿌려 뱀을 쫓아내게 했다.

 

황제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니, 발 밑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여의는 이귀인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다가, 황제가 마음이 불타는 듯 초조하게 들어오자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황상께서는 홍복을 누리시옵소서. 황후께서는 홍복을 누리시옵소서.”

 

황제는 서둘러 여의가 일어나도록 부축하며 친절하게 말했다.
 “이귀인은 어떠하냐?”
황후도 계속 초조해했다.
 “태의는 왔느냐? 어째서 또 뱀이 나오고, 또 복통이 생긴 것이야. 본궁은 아가소에서 오면서 줄곧 가슴이 두근거렸네.”

 

여의가 급히 말했다.
 “옛말에 경칩이 오면 뱀이 굴에서 나온다 하였사옵니다. 오늘 경양궁에 어디서 왔는지 독사가 튀어나와 이귀인이 갑자기 놀라서 태기를 건드렸사옵니다. 태의가 유산 방지약을 지어 마시게 했고, 이귀인은 잠시 잠들었으니 이제 큰 탈은 없을 것이옵니다.”

 

황제는 이귀인이 잠들어서도 놀라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자못 가엾게 여기며 말했다.
 “이귀인은 처음 회임하여 여러모로 몸이 불편하고, 오늘은 또 이러한 일을 겪게 되었으니 몹시 놀랐을 것이다.”

 

황후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황상, 이귀인은 귀한 아이를 회임하였사온데 이번에 이렇게 깜짝 놀랄 일을 겪다니 참으로 가련하옵니다. 신첩이 듣기에 뱀은 음기와 독기가 넘치는 것이온데 갑작스럽게 경양궁을 범하여 소란을 피웠으니, 순조롭지 않은 것이 있을까 걱정이옵니다.”

 

황제가 주저하며 말했다.
 “황후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황후는 얼굴 가득 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황상, 경양궁은 현궁문(玄穹門)과 가깝고 땅의 기운이 습하여, 앞으로 또 뱀이나 쥐, 개미 등이 꼬여 복중 태아를 놀라게 할 수 있으니 어찌해야 좋을지요. 신첩의 생각으로는 이귀인이 다른 궁으로 옮겨 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황제는 이상히 여기며 말했다.
 “다른 궁으로 옮기자고? 갑자기 궁원을 정리한다고 해도 이귀인이 낯설어 할 것이오.”

 

황후가 말했다.
 “동서육궁에서 줄곧 사람이 살지 않는 궁전이 있지만, 임시로 치운다 하더라도 불편할 것이옵니다. 이귀인을 앞에 있는 영화궁으로 옮길 수도 있지만, 영화궁은 아주 불길하니 거하기 마땅치 않습니다. 이귀인은 처음 회임한 것이라, 가장 좋은 것은 돌봐줄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황후의 눈빛이 여의의 얼굴을 가볍게 훑었다.
 “오늘 이귀인의 일은 다행히 한비가 있어서 아무 탈이 없을 수 있었사옵니다. 경양궁의 잡스러운 것들을 모두 치울 동안 이귀인을 연희궁으로 옮겨 잠시 지내게 했다가, 정리가 끝나면 다시 경양궁으로 돌려보내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황제는 살짝 주저하며 여의를 보았다.
 “연희궁에는 이미 한비와 해귀인이 지내고 있고, 또 첫째 황자도 있는데 사람을 또 들이면 너무 번잡하지 않겠소?”

 

이렇게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이귀인이 살짝 신음 소리를 내며 깨어나 황제가 곁에 있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황상께서 오셨군요. 신첩은 오늘 이렇게 깜짝 놀랄 일을 겪어서 정말이지 황상을 뵙지 못하게 되는 줄 알았사옵니다.”

 

황제가 급히 위로하여 말했다.
 “허튼소리 말거라. 짐은 그대가 짐을 위해 황자를 낳아주길 바란다.”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이귀인은 본래 황후의 사람이고 장춘궁은 널찍하니, 이귀인을 황후 궁으로 옮겨서 황후가 돌본다면 짐도 안심할 수 있겠소.”

 

황후는 고개를 돌려 눈가를 훔치며 자기도 모르게 슬픈 기색을 띄었다.
 “본래 이귀인을 돌보는 것은 신첩의 본분이옵니다. 다만 신첩 방금 아가소에서 오는 길이었사온데, 아직 황상께 아뢰지 못한 것이 있사옵니다. 신첩의 둘째 황자가 풍한이 들어 계속 몸이 좋지 않사옵니다. 신첩이 직접 둘째 황자를 돌볼 생각이었어서 아무래도 몸을 둘로 나눌 수 없으니, 이귀인을 잘 돌보지 못하고 오히려 황상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사옵니다.”

 

황제는 놀라고 의아하여 벌떡 일어났다.
 “영련이 아프다니, 심각한 것이오?”

 

황후는 친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니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슬픔이 가득하여 말했다.
 “모두 신첩이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이옵니다. 황상께서 부디 신첩이 영련을 아가소에서 데려오도록 허락하시어 직접 돌볼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영련의 병이 나으면 다시 아가소로 보내겠사옵니다. 이귀인에 관해서는 신첩이 혜귀비에게 부탁할 수도 있사옵니다. 다만 황상께서도 아시다시피, 혜귀비가 비록 나이는 더 많지만 만일 오늘 같은 일이 또 있을 때 한비만큼 침착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니, 만일 한비가 없었다면 이귀인의 태아는 아무래도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이귀인은 황제의 옷소매를 잡아 끌며 감읍하여 말했다.
 “황상께 아뢰옵니다. 오늘 다행히 한비마마께서 신첩을 위해 매사 침착하고 빠르게 독사를 쫓아내주었사옵니다. 하나 이곳은......”
이귀인은 경양궁의 난간과 대들보를 둘러보며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신첩은 절대 이곳에서 계속 지내지 못하겠사옵니다.”

 

황제가 작게 읊조렸다.
 “그렇다면......여의, 짐은 이귀인을 그대의 연희궁으로 보내 잠시 머물게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여의는 핑계를 대어 거절할 수 없음을 알고 말했다.
 “신첩, 돌아가서 정전의 동난각 두 칸을 정리하여 이귀인이 거하게 하겠사옵니다. 다만 이귀인이 누추하다고 꺼리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옵니다.”

 

이귀인이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찌 싫다 하겠사옵니까. 앞으로 한비마마께 폐를 끼치게 되었사옵니다.”

 

황후 또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궁에서 황상께서 제일 관심 가지시는 것이 한비와 이귀인이니, 두 사람이 함께 거하면 황상께서 보러 가시기에도 편하실 것이네.”

 

 

 

 

여의는 궁으로 돌아오자 울적해져서, 궁인들에게 정전의 방 두 칸을 정리하라 명하고 해란의 거처로 향했다.

 

해란은 한가로이 할 일이 없어서 진주로 구름과 국화 무늬를 수놓은 편한 월백색 장삼을 입고 조그마한 법랑 난로를 끌어안고 창가에서 향주머니를 만들고 있던 참이었다.

 

여의는 손을 내저어 엽심에게 알리지 말라는 뜻을 표하고는 주렴 장막을 들추며 미소를 지었다.
 “날씨가 따뜻해졌는데 어째 아직도 난로를 끼고 있는 것이야. 그리도 추운 게냐?”

 

해란이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형님 오셨어요.”
해란은 난로를 여의 품안에 밀어넣었다.
 “제가 난로를 어디다 쓰겠어요. 형님이 경양궁에서 마음이 오싹해지고 두려운 일을 겪었을까봐 특별히 형님 주려고 준비해둔 것이지요.”

 

여의는 깜짝 놀라며 해란의 틀어 올린 머리에서 떨어지려 하는 구슬과 비단으로 만든 꽃장식을 바로잡아주었다.
 “네가 참으로 소식이 빠르구나!”

 

해란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지금 궁중의 눈이 모두 경양궁을 보고 있으니, 바람에 풀이 스치기만 해도 다 알거예요.”

 

여의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모든 이목이 전부 연희궁을 향하겠구나.”

 

 “경양궁 하나만으로도 독사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는데, 이귀인이 옮겨오고 나면 연희궁은 뱀과 벌레와 쥐와 개미가 들끓는 곳이 되겠군요.”
해란은 여의를 끌어당겨 탁자 위에 늘어놓은 향초 잎들을 살펴보게 했다.
 “이건 박하잎, 쑥, 반지연, 훈의초(라벤더), 양아욱 잎이에요. 모두 벌레와 잡스러운 것들을 쫓는 효과가 있지요. 저는 이것들로 향주머니를 만들어 연희궁 안에 매달아서 액막이 부적으로 삼으려고요.”

 

여의는 손을 내저어 모시는 궁인들을 모두 물러가게 했고, 해란은 직접 국화차 한 잔을 따라 여의의 손에 넘겨주자, 여의는 무심코 받아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도 이귀인이 갑자기 뱀을 만난 것이 꽤나 수상쩍다고 생각하는구나?”

 

해란이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탁자 위의 쑥 잎을 그러모았다.
 “오늘이 비록 경칩이지만 궁중이 어떤 곳인가요? 게다가 이귀인은 회임한 몸이니 모든 사람들이 중시하고 있는데 어찌 갑자기 독사가 나타난단 말이어요? 그리고 이귀인이 쉬는 곳에 독사가 떨어지다니 그렇게 공교로울 수가 있나요? 만일 오늘 형님이 침착하게 대처하지 않았으면, 이귀인뿐만 아니라 복중 태아까지 목숨을 잃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지요.”

 

여의는 소매에서 비단 손수건을 꺼내서 그 위에 묻은 유성 도료를 해란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도료에 무슨 이상한 점이 있는지 알아보겠느냐?”

 

 “저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얼핏 이런 냄시를 맡아본 적이 있어요. 이건 뱀딸기즙 냄새같네요.”
해란은 살짝 냄새를 맡아보고는 오래지 않아 깜짝 놀랐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뱀은 뱀딸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뱀딸기가 있는 곳이면 항상 뱀이 있다고 하지요.”

 

여의는 구름과 연기처럼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오늘 내가 경양궁에 명하여 웅황과 석회를 뿌리게 했는데, 내가 떠난지 두 시진도 안 되어서 독사 십 수 마리가 사방으로 달아날 줄 누가 알았겠니. 이 일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내가 비록 어디에서 일이 생긴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생각해보니 경양궁에서 이귀인의 회임으로 인해 특별히 경사스러운 일을 나타내기 위해 화려하게 장식했더구나. 이것이 비록 내무부의 관례라고는 하나, 누가 거기에 손을 써서 이런 지저분한 것들을 불러들였을 지 모르는 일이지.”

 

해란은 망설이며 말했다.
 “경양궁은 이귀인이 처음 회임했을 때 꾸민 걸로 기억해요. 이제 두 달이 지났으니 도료의 냄새가 충분히 퍼져서 이런 뱀딸기즙 냄새도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을 것이고, 마침 경칩 언저리라 온갖 벌레와 뱀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생각해보니 이 일을 계획한 사람의 계략이 아주 깊어서, 사전에 아주 세밀하고 자연스럽게 일을 안배해 두어 다른 사람이 의심하지 못하게 했네요.”

 

여의가 말했다.
 “이귀인이 연희궁에 오게 되었으니, 이는 이귀인 본인의 뜻이기도 하지만, 또한 황후의 바람이기도 하구나. 이귀인이 무사히 아이를 낳기 전까지 연희궁은 그저 조심하는 수밖에 없겠군. 아우님이 세심하기 이를 데 없으니, 내가 많이 의지를 하게 될 것 같네.”

 

해란은 여의의 손을 꼭 잡았다.
 “형님이 어떻게 저를 지켜줬는데요. 저도 반드시 보답할 거예요.”
여의는 마음 속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으니, 깊은 바다와 살얼음판 같은 궁중에서 해란이 있으면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함이 또 하나 더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하고 있을 때 엽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탕약을 받쳐 들고 들어와 말했다.
 “소주, 회임약을 드실 시간이옵니다.”

 

해란이 이윽고 말했다.
 “거기 놔두고 너는 잠시 나가있거라.”

 

여의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회임약의 냄새를 맡으니 무서워지는구나. 마시지 않을 수도 없고, 그저 내게도 자식이 생기기를 바랄 뿐이니.”

 

해란이 살짝 웃었다.
 “저도 이 냄새 안 좋아해요. 갑자기 황후는 무슨 좋은 마음이 들어서 우리한테 이런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거예요.”
해란은 말을 마치고 손 가는 대로 탕약을 전각 안에 있는 말리화와 동백 화분 안에 쏟아 버렸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여의가 놀라 말했다.

 "아우님, 이게 무엇 하는 것인가?”

 

해란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저는 자식을 갖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니, 이런 성가신 것을 마셔서 뭐 하겠어요. 혓바닥이 고생하는 것이나 덜 뿐이지요.”

 

여의는 꽤나 놀라고 의아했지만, 최대한 평온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아우님도 총애를 못 받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젊을 때 평생 의지할 자식 하나 낳으려 하지 않는 게야.”

 

해란이 담담하게 웃었으니, 마치 정말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자식이 있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에요. 형님도 이귀인과 매귀인을 보면 알잖아요. 매귀인은 아이를 낳고 어마어마한 재앙을 만났고, 이귀인은 회임을 하고서도 무엇 때문에 해를 입었는지 모르지요. 저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지킬 재주도 없고, 그냥 편하고 즐겁게 살면 그만이에요.”

 

 “하지만......”

 

해란은 웃으며 파뿌리처럼 새하얀 약지로 입술을 눌렀다.
 “하지만 같은 건 없어요. 저한테는 의지할 형님이 있으니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

 

 

 

 

이귀인이 옮겨오기 전에 여의와 해란은 벌써 연희궁을 깨끗이 치워놓았고, 특히 이귀인이 머물 동난각에는 벌레를 쫓는 향주머니를 잔뜩 달아놓았다. 이는 방 두 칸을 내어 이귀인이 머물게 하기에는 여의의 마음이 자못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귀인은 성격이 온화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인데다가, 여의 자신은 서난각에 묵으면서 그녀에게는 동난각을 내주었으니, 마음 속으로 감격하여 곁에 두고 사용하는 물건만 연희궁에 옮겨오고, 나머지 물건들은 경양궁에 두었다가 필요할 때만 가져오게 하였다. 이귀인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교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 여의는 영황에게 특별히 분부하여 매일 책읽기는 작은 소리로 하고, 떠들썩하게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했다. 이귀인은 오히려 영황의 모습을 보며 기뻐했고, 매번 영황을 볼 때마다 자기 아이도 이렇게 착하고 사리 분별할 줄 아는 아이라면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된 이래로, 연희궁은 조금 비좁아졌지만 꽤나 북적거려지기도 했고, 황제도 반드시 하루에 한 번은 연희궁에 들렀다.

 

이렇게 십여 일이 흐르니, 자연히 혜귀비는 또 한숨이 늘어났다. 혜귀비는 한동안 황제에게 냉대를 받았으니, 비록 매일 만나기는 해도 절대로 시침을 하지는 못했다. 혜귀비는 또 복받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용안을 뵙기 좋도록 이귀인을 함복궁으로 옮겨 지내게 해달라 청을 올렸다. 그러면 황제는 오히려 씨익 웃으며 혜귀비에게 물었다.
 “그럼 만일 희월 그대가 독사를 보았다면 그대는 놀라서 먼저 도망갔겠느냐, 아니면 그래도 이귀인을 먼저 구했겠느냐?”

 

여의와 해란은 이귀인의 복중 태아를 극진히 보살폈으니, 먹는 것 하나 마시는 것 하나 모두 세심하게 살피고, 태의가 처방한 약마저도 따로 사람을 불러 약을 달이고 난 찌꺼기를 살피게 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어야 비로소 계속해서 마시게 했다. 이렇게 약 찌꺼기를 살피는 일을 쇄심은 귀찮아 하지 않고 오히려 꽤나 즐거워했다. 여의는 쇄심에게 웃으며 말해다.
 “네가 찾아온 태의는 믿을 만 하느냐?”

 

쇄심은 눈동자를 밝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인이 고향에서 알던 자이온데, 소인이 궁에 들어온 후에야 그 자도 태의원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비록 관직은 미천하지만, 소인은 이 자의 의술을 믿사옵니다.”

 

여의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 의술을 믿는 것이냐, 아니면 그 사람을 믿는 것이냐?”

 

쇄심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뿐이었다. 여의는 벌써 눈치챘다.
 “보아하니 네게 시집갈 곳을 찾아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니.”

 

쇄심은 수줍어서 다급히 말했다.
 “황송하옵니다.”

 

여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자 더러 태의원에서 열심히 분발하고 있으라 하여라. 어느 날에 내가 반드시 너희를 혼인시켜주마.”

 

쇄심은 감격하여 여의를 바라보았다.
 “그럼 소인은 먼저 가서 저녁 수라를 준비하겠사옵니다. 황상께서 벌써 어명을 내리시기를, 오셔서 소주와 함께 수라를 드시겠다 하셨사옵니다.”

 

그러나 이날 밤, 여의는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기다렸지만 황제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아보라고 내보냈던 삼보는 문간에서 줄곧 감히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여의는 차갑게 식은 달콤한 고구마채를 천천히 한 젓가락 집어먹었으니, 그 고구마채는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곧 녹아버리고, 꿀을 더해 더욱 시원하고 달콤했다. 그러나 이토록 달달한 고구마채를 먹고 있는 순간에도, 그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은 도깨비 장난 같았고, 달콤함 속에는 쌉사름한 맛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여의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은젓가락 위에 달린 사슬이 부딪혀 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황상께서 오지 않으시니 어찌된 일인지 있는 그대로 말하거라.”

 

삼보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황상께서 양심전에서 나오셔서 막 우리 연희궁으로 오시려 하는데 황후마마께옵서 종사문 앞에 무릎을 꿇으시고 둘째 황자의 몸이 빨리 나아 강건해지도록 복을 빌고 계실 줄 누가 알았겠사옵니까. 황상께서는 그제서야 둘째 황자의 풍한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사옵니다. 황상께서 안타까워하시며 그 자리에서 황후마마와 함께 장춘궁으로 가시고는, 그리고는......”

 

 “그리고는 계속 그곳에 계시며 아니 나오시는 게지.”

 

삼보가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 답하자, 여의는 탕을 한 국자 떠서 느릿느릿 마시며 말했다.
 “양심전에서 연희궁으로 가려면 반드시 종사문을 지나야 한다. 황후마마께서는 천지신명과 부처님의 보우하심을 빌려거든 보화전으로 가시지 왜 종사문에 가셨겠느냐?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데 것을 구하려 하는 것이니, 황상께서는 당연히 장춘궁을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삼보가 눈동자를 굴렸다.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하는 데에는 분명 그것만의 장점이 있으니, 일거양득이겠지요.”

 

여의는 담담하게 웃으며 쇄심에게 말했다.
 “가서 요리를 덥혀 오거라. 나도 배고픔을 참고 기다릴 필요 없겠구나.”

 

쇄심이 매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주......”

 

여의가 살짝 웃었다.
 “황후께서는 귀하기로는 육궁의 으뜸이시니, 황상께서 황후와 함께 계시는 것도 인정과 도리에 맞는 일이다.”

 

 

 

 

이튿날 새벽이 밝고 황제가 왔을 때, 황제의 눈가는 이미 시커매져 있었다. 여의는 마침 아침 식사를 하려다가 황제가 앞에 온 것을 보고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황상께서 이렇게 일찍 오실 줄 모르고 수라를 세심하게 준비하지 못하였사오니 황상께서는 용서해주시옵소서.”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그대가 먹는 것을 먹으면 된다.”

 

여의는 붉은 생강을 곁들인 맑은 죽을 직접 받쳐 들고 와서는, 또 신선한 타락차(우유를 넣은 차)와 마장소병(麻酱烧饼, 깨양념장(麻酱)을 바른 사오빙(烧饼)의 일종으로, 사오빙은 밀가루 반죽을 동글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 화덕 안에 붙여서 구운 빵. 표면에 참깨를 뿌려서 먹기도 한다.)에 산뜻한 양념장을 함께 가져와 말했다.
 “황상께서 어젯밤에 잘 주무시지 못한 것 같으니, 담백하게 드셔서 기운을 차리셔야 하옵니다.”

 

황제의 양미간에 어렴풋이 걱정하는 기색이 비쳤다.
 “영련이 앓는 동안 계속 좋지 않았는데, 짐이 그 모습을 보니 참으로 마음이 아프더구나.”
황제는 여의의 손을 꼭 잡았다.
 “여의, 영련의 상태를 보지 못했느냐? 작은 얼굴이 몰라보게 여위었다. 짐은 영련을 보면서 줄곧 울고 싶었다.”

 

여의는 황제가 이토록 걱정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이 조금 오그라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황상, 걱정하시 마셔요. 둘째 황자는 황후마마께서 세심하게 보살피시니 분명 금방 좋아질 거예요.”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후가 말하기를, 만일 영련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으면 곧 보화전에 무릎을 꿇고 복을 빌 것이라 했다.”
황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매우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으니, 여의는 뜻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뭇 사람들에게 물러가라 눈짓했다.

 

황제가 얼굴빛을 바로잡고 말했다.
 “짐은 결심했다. 영련의 병이 좋아지기만 하면, 짐은 영련을 태자로 세워 제위를 계승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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