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각 안에서 침수향의 향기가 짙게 퍼져 나와 코를 찌르니, 여의는 조금 놀랐지만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있어도 그 이야기를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필사적으로 눌러 참고 있었다. “영련은 정궁 적출 소생이니 황상께서 태자로 세우시는 것도 인정과 도리에 맞는 일이지요.” 황제는 죽을 한 입 먹고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짐은 어릴 때부터 스스로가 적출 소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서출인 아이의 신분은 아무래도 같지 않았다. 설령 이제 황제가 되었다 해도, 한밤 중에 꿈에서 깨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억울하다. 개국 이래로 순치제부터, 강희제, 선제, 그리고 짐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출이었다. 짐은 정말로 짐의 아들은 그 누구도 트집 잡을 수 없는 귀한 신분의 당당한 적출 소생이었으..
황제는 혜귀비를 보며 다소 무관심한 듯 거리를 두었다. “됐다. 짐이 이미 왕흠을 처리했으니, 그대도 그만 울거라. 먼저 궁으로 돌아가보아라.” 혜귀비는 마음 속이 억울함으로 가득하여 무어라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황제는 그토록 냉담하고 소원한 말투로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짐이 다시 그대를 보러 갈 것이니, 돌아가보라.” 혜귀비는 하는 수없이 아쉬워하며 물러나올 뿐이었다. 여의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연심을 보며 말했다. “황상, 이 일은 왕흠에게 큰 죄가 있는 것이고 연심은 죄없이 피해를 당했을 뿐이옵니다. 누가 왕흠과의 대식을 하사받든, 이런 운명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사옵니다. 황상께서는 연심이 황후마마를 오래 모셔온 것을 보아 연심을 더는 벌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
황제는 잠시 조용히 정원에 아득하게 핀 홍매화를 바라보고만 있었으니, 암홍색 꽃술을 내어놓은 것이 마치 피비린내 나는 붉은 점이 수없이 많이 튀어 있는 것 같았다. 여의는 조심스럽게 황제의 안색을 살폈으나, 황제의 안색은 평온하기 그지없어 마치 가을날의 맑고 깨끗한 호수 수면처럼, 해질녘 황금빛 따뜻한 햇살이 그 수면 위에 흩뿌려진 것처럼 따뜻한 기색을 띠며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았다. 황후는 여의의 손을 누르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혜귀비의 말이 조급한 감은 있지만, 신첩은 이 온 궁중에 어느 누구든 무슨 일이든 막론하고 대청의 국조(国祚, 나라의 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여의는 ‘목매어 죽는다’는 말에 생각이 이르자 온몸에 한기가 드는 것 같..
매귀인이 총애를 잃은 것은 이미 정해진 것 과도 같았다. 낳은 것이 그토록 불길한 ‘죽은 아이’였기 때문에, 출산 전의 총애는 그녀가 출산한 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어떠한 위로도 없고, 단 한 번의 병문안도 없고, 그동안 꽃과 비단을 펼쳐 놓은 듯 화려했던 영화궁은 이렇게 적막해져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가장 어질고 총명한 황후마저도 놀라서 피하며 다시 가지 않았다. 황후는 만나서 감정 상할 것을 두려워하여 매귀인이 영화궁에서 한 걸음이라도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몸조리가 끝난 후에는 편전에서 복을 빌던 법사마저도 보화전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니, 오직 적막한 바람과 눈 내리는 소리만이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슬픈 매귀인과 함께 할 뿐이었다. 며칠간 보기 드문 맑은 날씨에 또 초열흘이 돌아와 ..
사방은 끔찍할 정도로 고요했고, 이따금씩 정원을 관통하는 바람소리가 마치 이름 모를 괴물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얼이 빠져 있었다. 거친 바람과 성난 파도와 같은 마음 속의 떨림이 솟구쳐, 여의는 비틀거리며 무의식 중에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터져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억눌렀다. 강보 속의 아이는 사지는 비쩍 말랐지만 복부는 머리만큼 커다랐으며 청남색으로 기이하게 물들어있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아이의 몸에 남녀의 특징이 모두 있다는 것이었다. 황제는 놀라서 손을 덜덜 떨었고, 하마터면 본능적으로 아이를 밀쳐낼 뻔했다. 다행히 왕흠이 확실히 붙들고 있었지만, 왕흠도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팔에 안고 있는 아이를 어찌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