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난각의 창 아래에는 앵두나무로 꽃무늬를 조각한 침상이 깔려 있었고, 청색과 금색으로 테를 두르고 밝은 황색으로 만복 무늬가 들어간 섬단(闪缎)[각주:1]으로 요를 만들어 깔아 놓았으며, 침상에는 백단목에 금으로 구름을 새기고 다리가 가느다란 작은 탁자를 하나 올려두었는데, 위에는 다과가 놓여있어서 황제와 황후 두 사람이 마침 한담을 나누고 있었던 것 같았다. 평소처럼 마주 앉았기 때문에 황후는 다만 단순하게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진주 꿰미로 장식된 비녀와 귀밑머리에는 비단으로 된 앵두꽃 조화를 꽂았으나 몇가닥 정교한 술이 달린 은비녀였을 뿐이고, 몸에는 자줏빛 작약과 장수문(长寿纹)을 비단실로 수놓은 저고리를 입었는데, 난각 안의 따뜻한 온기를 쬐니 얼굴의 홍조가 도드라졌다. 황후는 여의가 문안을 올리는 것을 보고 소심을 시켜 작은 의자를 가져와 곁에 앉으라 하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한비, 진눈깨비가 내리는데 자네를 부른 것은 중요한 일이 있어 자네에게 몇마디 물으려는 것이네."

황후가 막 말을 하려 하자 황제가 천천히 껍질을 벗긴 호두를 골라 먹으며 태연히 말했다.
"어젯밤의 일로 그대와 해상재는 모두 좀 나아졌는가?" 

여의는 마음이 조금 따뜻해져 몸을 앞으로 조금 숙이며 말했다.
"신첩은 별 탈 없사오나 해상재가 매우 놀란데다 발에 상처를 입어서 아직 몸조리하고 있사옵니다."

황제가 말했다.
"그대의 궁에 있게 되었으니 그대가 마음써서 잘 돌봐주거라. 해상재에게 안심하고 지나간 일은 더 생각하지 말라 분부하거라."

여의가 대답하니 황제는 온화한 미소를 짓자 황제를 향해 말했다.
"오후는 조금 적막하니 이럴 때 매답응을 불러 비파 한 곡 연주하게 하시어 한가하게 보내시는게 어떠하온지요. 허나 매답응은 대엿새나 어가를 뵈려 하지 않았지요."

황제의 엷은 미소가 이 전각 안의 고요한 먼지처럼 따뜻한 정취를 품고 있었다.
"매답응은 늘상 얼굴의 상처가 나아지지 않아 어가를 볼 수 없다 말하니 내버려 둬야지."

황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날 귀비가 크게 화를 조금 냈기는 하나 매답응도 잘못한 것이 있사옵니다. 황상께서는 늘 매답응을 생각하시고 소홀히하지 않으시니 신첩도 또한 기쁘고 안심이 되옵니다."

황제의 찻잔은 비취색이 영롱하여 마치 아주 좋은 벽옥 같았다. 황제는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비록 보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오."

여의는 입궁 후 단 한 번 황제를 모셨을 뿐, 오랫동안 어가를 뵙지 못하여 비록 마음 속에는 황제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조금 쓸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쓸쓸함은, 즐겁고 아름다운 곡을 노래하면서도 가사 속의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을 아는 것이고, 서로 사모하고 그리워하지만 혼인하지 않고 헤어지는 것이며, 그런 쓸쓸함은 꽃이 활짝 피고 달이 둥글어 신혼이 아름답고 원만한 가운데 갈고리처럼 싸늘한 그믐달을 바라보게 될 것을 생각하는 것이며, 그런 쓸쓸함은 휘황찬란하고 태평한 가운데 한 조각 외로운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쓸쓸해진다 하더라도 그 즐거움은 따뜻함과 서늘함이 반복되는 것이어서, 한번 차가워지면 필경 걱정이 있게 되고,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따뜻함을 그리는 마음이었다. 어젯밤에 총총히 만난 것은 본래 황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나, 황제의 흘끗 보는 시선은 조금도 자신을 향하지 않고 하늘로 멀리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처럼 흰 구름 속에는 머물지 않았다.

여의의 시선이 문득 황후의 옷 위에 집중되었다. 그 차분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자줏빛에 빼곡히 수놓은 작약과 벌, 나비 도안이 가득했고, 만년청으로 목숨 수 자를 테두리에 수놓은 옷은, 매실처럼 푸른 색에 유백색 능소화를 수놓은 자신의 옷에 비추어보면 너무나도 칙칙하여 유행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능소화는 본래 외롭고 고요한 꽃이었다.

여의는 목구멍에 삼키지도 못하고 토하지도 못하는 시큼한 매실이 하나 걸려있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는 억지 웃음을 걸어놓고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매답응이 황상을 모신 나날이 길지 않은데 황상께서는 어찌 이리도 매답응을 좋아하시나이까?"

황제의 웃음기 없던 얼굴에 점점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매답응이 짐의 곁에 있었던 날이 오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짐 곁에 오래 있었던 사람처럼 무슨 일이든 모두 생각이 미치니 짐은 매답응과 마음이 맞는 것 같구나."

여의는 이 말을 들으니 마음 속에 새파란 매실이 고여있는 듯 다시 쓰라렸지만 그저 눈길을 내리깔 뿐이었다. 

황후의 입꼬리에 웃음기가 떠오르니, 마치 떨어질듯 말듯한 한 송이 꽃봉오리처럼 잠시 매달려있다가 꽃봉오리를 활짝 터트렸다.
"마침 그 일을 말씀하시니 신첩 몇마디 드릴 말씀이 있사오나, 말씀 올려도 좋을지 아닐지 모르겠사옵니다."

황제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황후가 짐에게 말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소?"

황후가 미소를 지었다.
"아침 수라 후에 매답응이 신첩을 찾아와서 신첩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였사온데, 신첩이 그 자리에서 감히 처결할 수 없어 부득이 황상께 보이려 매답응을 데려왔사옵니다. 매답응은 하염없이 울면서 지금도 감히 전각에 들지 못하고 있사온데, 신첩의 생각으로는 그날 매답응이 뺨을 맞은 일을 한비가 직접 보고 매답응을 영화궁으로 바래다 주기도 해서 급히 한비를 불러 들인 것이옵니다. 바라옵건대 황상께서는 매답응의 얼굴을 한번 살펴보시지요."

황제는 매우 의외라 여겼다.
"예희가 왔다고? 어디 있소?"

황후가 우울하게 말했다.
"감히 바로 황상을 뵈러 오지 못하고 편전에서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황후는 황제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소심, 너는 가서 매답응에게 들어오라 해라. 무슨 억울한 일이 있는지 스스로 말하게 하라."

소심은 잠시 밖으로 나가서 매답응을 데리고 들어왔다. 매답응은 평소처럼 고운 옷을 입었으나 얼굴에는 하얀 비단을 덮고 양쪽의 귀밑머리 꽃으로 고정하여 맑은 물의 부용같이 아름답고 고요한 얼굴을 가리고 들어왔다.

매답응은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법도에 따라 예를 올리자 황제는 매답응이 예를 다 올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두 뺨을 맞았다고는 해도 그동안은 괜찮지 않았더냐."

매답응은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상처는 신첩의 얼굴에 있는 것이오니 황상께서는 아직도 빨갛게 부어있는 이 우스운 꼴을 보시옵소서."

여의는 매답응과 황제가 이리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문득 자신이 처음 시집왔을 때를 떠올렸다. 새벽에 일어나 마름꽃 경대를 마주하고 치장할 때에도 황제와 함께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하며 애교를 부리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으며 존귀하고 비천함의 구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 시절이야말로 일생동안 가장 천진하고 걱정이 없던 좋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리도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눈앞에는 황제의 그때와 같은 얼굴이 있었지만, 황제가 새 사람과 그때의 자신과 같이 즐겁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여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들어 황후를 보니, 황후는 그저 불당에 모셔진 아름답고 빈틈없으며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장엄한 불상처럼 얼굴을 드리우고 있었다. 여의는 옷섶에 드리워진 금실로 꿴 하얀 진주 장식을 만지작거렸다. 그 진주는 매끄러우면서도 단단해서 손바닥이 배겨 아팠다. 여의는 풍한이 낫지 않아 어질어질한 기분이 갈수록 얼굴로 조여들어오는 것 같아 어쩔 수없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매답응이 울고 있을 때 문득 얼굴에 쓴 가리개가 들춰지자 여의는 언뜻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답응의 얼굴은 본래 따귀를 맞아 빨갛게 붓고 입가에 피가 보였을 뿐이었으나, 지금은 시퍼렇게 멍들어 부어올랐을 뿐만 아니라 입가의 상처에도 궤양이 생겨 보조개가 있는 곳까지 퍼져나갔고, 마치 서리가 내린 것같이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고 아래에는 선홍색 살점이 드러나 있었다.

황제는 놀라 얼굴빛이 변했다.
"네 얼굴이....."
황제는 말을 잇지 못하고 황후와 눈을 마주치자 황후가 곧바로 말했다.
"이런 모양은 분명 따귀를 때려 생긴 것이 아니고, 반드시 무언가를 잘못 써서 생겼거나 먹을 것을 가리지 않아서 생긴 것이옵니다."

매답응은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마치 밤중에 방울져 떨어지는 찬 이슬처럼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슬피 바라보며 울며 하소연했다.
"신첩 용모를 소중히 여기니 감히 얼굴을 망쳐 황상을 불쾌하시게 하지 못하나이다. 귀비께 죄를 지은 것은 신첩의 잘못이오니 신첩 맞아도 받아들여야 하오나, 신첩 이미 음식을 담백하게 하였고 제시간에 약을 사용했사옵니다. 허나 얼굴은 도리어 상처가 점점 더 심해지니 신첩은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감히 황상을 뵙지 못하고 할 수 없이 황후마마께 고하였사옵니다."

황후가 걱정하여 말했다.
"신첩이 매답응을 모시는 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두 말하기를, 매답응이 요며칠 음식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고 마시는 물도 모두 특별히 붓기를 가라앉히고 어혈을 푸는 율무 물을 마셨으며 삶은 달걀로 문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니 충분히 조심한 것이옵니다."

황제가 조금 주저했다.
"그대가 약을 쓰고 있다고? 어디서 난 약이냐?"

매답응은 흐느껴 울던 것을 멈추었다.
"태의원에서 보내온 것이옵니다. 귀비께서 신첩을 때렸을 때에도 스스로 양보하여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셨고, 그래서 특별히 약을 보내시어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표하셨사옵니다."

황제의 눈빛이 조금 차가워졌다.
"그럼 그 약을 가져왔느냐?"

매답응이 소매에서 작고 둥근 사발 하나를 꺼내니 소심이 서둘러 받아가지고 가서 열고 냄새를 맡고는 말했다.
"그날은 소인이 태의원에 가서 약을 받아 왔사옵고 이것이 틀림없사옵니다."

황제의 눈빛에 의혹이 조금 보이자 황후가 곧바로 말했다.
"그 날 신첩도 있었사옵고, 후궁의 화목을 위해 신첩이 귀비를 타일러 매답응에게 약을 보내도록 하였사오며 신첩이 소심을 시켜 귀비의 이름으로 약을 받아 보내게 했사옵니다."

황제의 눈에 칭찬하는 빛이 스쳤다.
"황후가 세심하구려. 짐에게 이토록 세심한 그대가 있으니 후궁이 비로소 이처럼 평온할 수 있는 것이지."

황후는 안심하여 미소지었다.
"황후의 본분과 책임이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신첩은 그저 책무를 다하려 하였을 따름이옵니다."

황제는 더이상 말이 없다가 곧 물었다.
"왕흠, 짐이 기억하기로 방금 태의가 진맥을 하러 왔던 것 같은데 아직도 있던가?"

왕흠이 공손하게 말했다.
"태의원의 조명, 조 태의이옵니다. 지금 편전에서 황상의 겨울철 보양 처방을 만들고 있었나이다."

황제는 조금 의아해했다.
"조 태의에게 들어오라 해라. 와서 이 약이 어떤 것인지를 보라 하거라."

왕흠이 곧바로 가서 조 태의를 들어오도록 청하니, 조 태의는 매우 재빨리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어서 인사를 올리며 매답응 얼굴의 붉은 붓기를 보고, 또 약에 대해 듣고는 손에 약을 조금 찍어 비벼보고 서둘러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 약은 태의원에서 보낸 것이 틀림없사옵니다. 다만 누군가 백자단을 조금 더해놓아 부기를 가라앉히고 어혈을 푸는 좋은 약을 붉은 부종을 생기게 하고 피부가 벗겨지게 하는 약으로 만들어 놓았사옵니다."

황후가 눈살을 찌푸렸다.
"백화단? 어쩐지 귀에 익은 것 같네만?"

조 태의가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 겨울이 되면서 각 궁에서 모두 받아간 백화단 분말은 햇볕과 바닷바람에 말린 등나무 잎을 섞어서 풍한을 제거하고 습기를 날려서 통증을 멈추게 하는 좋은 약이옵니다. 궁에 습기가 많으니 황후마마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각 궁에 적지 않게 나누어주시고 향주머니를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게 하셨사옵니다. 오직 매답응만이 최근 총애를 받으셔서 영화궁이 수리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만 없사옵니다."

여의도 거들었다.
"맞사옵니다. 신첩의 궁에도 지난 달에 적잖이 받아왔사옵니다."

황후가 이어서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신첩과 한비도 모두 이 향주머니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황제는 매답응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백화단이 대체 무슨 물건이냐?"

조 태의가 말했다.
"백화단을 다른 약과 함께 사용한다면 그것은 좋은 약이옵니다. 그러나 만약 백화단만 사용한다면 반대로 무척 독하고 독성도 있사옵니다. 백화단이 피부에 닿으면 아주 조금이더라도 붉게 부풀어오르고 피부가 벗겨지며 계속되면 썩어 문드러지고 진물이 흐르며 궤양이 생기게 되옵니다. 그리고나면 궤양은 날이 지날수록 낫지 않고 상처의 살색이 회백색 또는 암홍색이 되며 거무스름한 색이나 초록색의 진물이 흘러 악취가 나서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부스럼은 더욱더 썩고 깊어져서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뼈가 보이게 됩니다. 답응 소주의 병증은 이 연고에 백화단이 섞여있기 때문이옵니다."

매답응은 이 말을 듣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소심을 가리키며 말했다.
"황상, 황상, 신첩은 누구에게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하온데 결국 소심이 이런 약을 가지고 와서 신첩을 해하였사옵니다!"
매답응이 비록 소심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눈은 반대로 황후를 노려보며 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첩 출신이 천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만약 누군가 신첩이 황상 곁에서 시중드는 것을 보아 넘기지 못한다면 신첩은 차라리 여기서 머리를 찧고 죽을지언정 이런 비열한 수단은 견딜 수 없사옵니다!"

황후의 표정이 크게 변하며 곧장 일어나 말했다.
"황상께서는 밝게 살펴주시옵소서. 약은 비록 신첩이 소심을 시켜 가져오게 하였으나 만약 신첩이 한 일이 이런 하늘이 용납치 않을 일이었다면 신첩 어찌 감히 매답응을 양심전으로 불렀겠사옵니까. 분명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지 않았겠사옵니까."

황제가 차를 한 입 마시고 황후를 부축하며 말했다.
"황후가 항상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을 짐도 알고 있소. 허나 소심은......"

소심이 황급히 두 무릎을 굽히며 곧장 바닥에 꿇어앉았다.
"황상께서는 살펴주시옵소서, 황후마마 살펴주시옵소서. 그날은 소인이 직접 약을 가져오고 직접 매답응의 손에 넘겨주었사오나, 소인은 감히 그 약에 다른 것을 섞지 않았사옵니다!"
소심은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나 소매를 말아올리고 말했다.
"그날 소인이 약을 가지러 태의원에 갔을 때 약을 자르는 작은 가위에 실수로 베여서 그 때 태의들이 소인이 이 사발의 약을 조금 찍어서 바르라 알려주고, 말하기를 지혈 효과가 있다고 하였사옵니다. 소인 그 때 이 약을 사용하였고 아직 어디에도 궤양은 없사옵니다."

소심의 손바닥에는 손톱 크기의 붉은 상처가 있었는데 분명히 며칠 전에 생긴 것이었다. 소심은 급히 변호했다.
"소인 감히 허튼소리를 하지 못하옵니다. 이 일은 태의원의 적잖은 태의들이 보고 있었고 모두 소인의 일을 증명해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조 태의가 말했다.
"황상, 황후마마, 그날 소신도 태의원에 있었사온데 이 일이 있었사옵니다. 이런 종류의 연고는 만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날 오직 이 한 병만이 남아있어서 이 그릇에서 연고를 조금 덜어 소심 마마님에게 사용했사옵니다." 황후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쓰고 아무 일이 없었다면, 그렇다면 소심, 네가 오는 길에 누군가 이 약과 부딪힌 사람은 없었느냐?"

소심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로 없었사옵니다. 소인이 서둘러 지나가며 영화궁에 도착했을 때는 한비마마만이 계시었고 소인은 약을 드리고는 곧장 나왔사옵니다."


매답응은 손수건을 쥐어짜며 이를 악물고 서럽게 흐느꼈다.
"맞사옵니다. 그날 소심이 약을 보내왔을 때 한비가 신첩과 함께 잠시 앉았다가 갔사옵니다. 그리고나서는 다른 사람은 누구도 신첩을 찾아오지 않았사옵니다."

호기심에 찬 황제의 눈빛이 여의의 얼굴에 머물었다.
"한비, 그대는 거기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

전각 안에는 용연향의 깊고 어두운 향이 너무 짙어서 온기를 깊이 스며들게해서 거의 공기가 통하지 않았다. 여의의 표정은 옥처럼 차분했다.
"황후마마께서 신첩에게 매답응을 데리고 영화궁으로 돌아가라 하시어 신첩 몇마디 이야기만 나누고 바로 나왔고 결코 오래 있지 않았사옵니다."

황후의 눈길은 부드러웠지만, 부드러운 가운데 바늘같이 날카로운 빛이 있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한비를 제외하고 그 약을 건드린 다른 사람은 없다는 것이로군. 영화궁에서 이것을 줄 때도 없었고. 한비, 그렇다면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본궁에게 말할 수 있겠나?"

여의는 소나무와 학, 사철나무가 그려진 두터운 직금 깔개 위에 무릎을 꿇으며 옷이 식은땀에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의는 그 때 따귀를 때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가 매답응을 영화궁에 바래다주고 약을 보내올 때까지 여러가지 뜻밖의 일들이 결국 촘촘한 그물이 되어 자신을 철통같이 옥죄어 들어 몸을 빼낼 수 없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마음은 성난 파도가 일렁이듯 놀라서 두근거렸지만 여의의 얼굴은 오히려 낙심한 기색을 털끝만큼도 내보이지 않고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황상, 신첩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사옵고 이 일의 자초지종을 알지 못하옵니다."

황후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망설였다.
"황상, 매답응은 오라나랍 부 출신이오니 추측컨대 한비가 정을 생각하여 분명히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매답응이 고개를 돌려 여의를 찬찬히 뜯어보며 살기등등하게 말했다.
"질투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빈첩이 황상의 은혜를 받는 것을 두고 사람들이 모함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사오나 설마 그 사람이 한비마마일 줄은 생각도 못했군요! 감히 마마께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그날 마마를 제외하고 또 누가 빈첩의 연고에 백화단 가루를 넣을 기회가 있었사옵니까?"

여의는 평소처럼 매답응의 시선을 조금도 피하려 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날 본궁은 계속 자네의 곁에 있었고 몇마디 나누고서는 곧장 돌아갔는데 만일 자네가 본궁이 면전에서 자네를 해쳤다고 믿는 것이라면 본궁도 할 말이 없네."

여의를 바라보는 황제의 검고 어두운 눈동자는 평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이렇게 큰 일로 시끄러워진 이상, 매답응의 얼굴을 상하게 한 일을 짐은 철저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다."

황후가 꺼림칙해하며 말했다.
"시기와 질투는 비빈의 큰 죄이오니 비밀리에 사람을 해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사옵니다. 후궁을 엄히 가르치고 단속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신첩의 죄이옵니다."

황제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후에게 과실이 있으나 죄는 그대에게 없소."
황제의 눈에는 유성의 꼬리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조금 참을 수 없는 기색이 비쳤으나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황후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한비, 자네가 한 것이 아니라고는 해도 물어는 보아야겠네. 신형사로 가거라. 할 말이 있으면 그곳의 심문하는 노파가 자네게 물을 것이야."

여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신형사는 위로는 비빈으로부터 아래로는 궁인에 이르기까지 후궁의 형벌을 관장하며, 일단 잘못을 저지르면 예외없이 안에서 가죽을 한 겹 벗겨내야 비로소 밖에 나올 수 있었다. 여의는 온몸의 솜털이 다 일어나는 불쾌한 느낌을 참으며 힘겹게 몸을 숙이고 예를 갖추었다.
"신첩의 결백에 관한 일이니 가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다만 황상께서는 신첩이 절대로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시옵소서."

황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안심하거라."

짧은 말이었지만 여의는 마음이 평온해져 온몸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예심이 참지 못하고 울며 말했다.
"황상, 소주의 말을 들어보시고 신형사로 보내지 말아주시옵소서. 소주께서 어젯밤 이미 감기에 드셨는데 어디 또 이런 고생을 감당할 수 있겠나이까. 황상!"

황제는 온화하게 말했다.
"감기에 걸렸다면 짐이 태의를 보내 진료하게 할 것이다. 다만 법도는 어겨서는 안되는 것이다."

황제의 말의 끝소리가 아직 흩어지지도 않았는데 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몸으로 문을 부딪혀 들어왔다.
"황상, 형님이 한 것이 아니옵니다! 아니에요! 모두 신첩이 한 일이오니 황상께서는 신첩을 신형사로 보내시옵소서!"




- - - - -

1. 너무 오랜만에 올렸지요;;;; 잠시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자금성에 가서 청나라 뽕을 좀 맞고 왔지요(하하) 아시는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조만간 내정(内庭) 지리를 한번 포스팅해볼까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춘궁이니 영화궁이니 위치랑 모습을 보면 좀 더 생생하게 와닿지 않을까 싶어서요ㅎㅎ






  1. [역자주] 섬단(闪缎): 수자직(繻子織)의 일종. 선명하고 광택이 있으며 날실과 씨실의 색이 달라,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비단. [본문으로]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