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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는 층계 아래로 끌어내려져 무릎 꿇려졌다. 눈발이 거칠게 얼굴을 때리니 살갗이 얼어붙는 것 같았고, 처음에는 아프다고 느꼈으나 점점 감각이 없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옷자락 위에는 옅은 얼음이 얼었다. 여의는 해란이 굴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일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마치 한 덩어리 들불이 속에서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아서 다시금 견디지 못하고 말했다.

"귀비마마, 마마께서 해상재를 호되게 꾸짖든 때리든 제가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허나, 해상재도 역시 황상의 비빈이니 마마께서 해상재에게 이렇게 치욕을 주실 수는 없사옵니다. 더욱이 노비들의 면전에서라뇨. 만일 정말로 해상재의 옷을 벗기고 몸수색을 해야 한다면 마마께서는 해상재를 핍박하여 죽게 하시려는 것이옵니다!"

해란은 엉엉 울며 마치 한 마리 궁지에 몰린 작은 짐승 같이 무력하게 헛되이 발버둥치고 있었다. 해란의 옷깃에 달린 여의단추가 이미 활짝 풀어헤쳐져 안에 받쳐입은 명주로 된 옷이 드러났다. 혜귀비는 그저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난리통 속에서도 여유롭게 복도를 내려다보며 연극 무대 앞에서 잘 만든 연극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앉아있었다. 혜귀비는 경멸하듯 여의를 힐끗 보았다.
"본궁도 해상재가 몸에 홍라탄을 숨기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허나 탄을 훔칠 수 있다면 틀림없이 다른 무슨 귀한 물건을 훔치지 않았겠는가. 이왕 나쁜 사람이 됐으니 좀 뻔뻔스러워져야지. 만약 속좁게 생각한다면 그건 어쨌든 자기가 스스로를 핍박하는 것이야."

여의는 혜귀비에게 조금도 되돌릴 여지가 없음을 보고 일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몸이 꽁꽁 얼어붙어 완전히 사지가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일어나더라도 어찌 찬 바람을 견딜 수 있으며 여럿이 우르르 달려들어 내리누르는 것을 어찌 당해내겠는가.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고통이 혀끝까지 치밀어올라와, 여의는 혀가 모두 얼어붙어 마비된 것 같았으니, 단지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얼굴을 데우다가 빠르게 얼음 방울이 되어버렸다. 이 고통은 끊임없이 부는 찬바람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마침 혼란한 가운데, 밖에서 갑자기 박수 치는 소리가 이어져 들려오더니 태감이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상 납시오—— 황후 납시오——"

벌을 받던 사람들은 하마터면 긴장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 했고, 슬프고 마음 아픈 가운데 한 가닥 기쁨이 생겨났다. 그 분이 오셨다, 결국 그 분이 오신 것이다.

혜귀비는 고개를 들고 사람들에게 하던 것을 멈추라는 뜻을 표시했다. 아약은 민첩하게 자기 몸에 둘렀던 솜을 댄 겉옷을 여의의 몸에 둘렀다.

문 앞에 어느덧 밝은 노란 색이 번쩍거리니, 황제가 벌써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황후는 산수 풍경이 있는 푸른 바탕에 백자련(百子蓮)[각주:1]을 수놓은 얇은 비단 옷을 입어, 비록 밤중에 쉬다 일어난 것이었지만 머리는 한가닥 흐트러짐이 없었고 드문드문하게 둥근 암홍색 마노 구슬로 된 비녀를 비스듬히 꽂고 있었다. 급히 달려오기는 했지만 표정은 파도에도 놀라지 않는 깊은 물처럼 편안했고, 비녀 아래에 달린 점취로 된 술도 걸음걸이를 따라 가볍게 흔들리며 맑고 깨끗한 은과 비취의 광채로 반짝거렸다.

혜귀비가 사람들을 데리고 뜰로 나아가 어가를 영접했다. 황제는 혜귀비를 보고 서둘러 부축했다.
"짐이 듣자하니 그대가 한증이 도졌다하여 서둘러 온 것이다."
황제는 귀비의 손을 꼭 잡고 초조하게 말했다.
"어떠한가? 심각한 것이냐?"

황후가 뒤에 있으며 침착하면서도 걱정스럽게 살폈다.
"황상께서 자네가 한증이 도지고 크게 화를 냈다는 말을 들으시고 이리도 서두르신 것일세. 원래 황상께서 잠이 드셨는데 서둘러 분부하여 일어나시고는 본궁과 함께 온 것이야."

황제의 눈가에는 다급함이 어려있었다.
"태의는 와서 살펴본 것이냐? 대체 어떠하다던가?"

혜귀비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신첩 황상과 황후의 관심에 감사하옵니다. 신첩의 궁에서 홍라탄이 부족하여 잠시 난방을 하지 못했더니 결국 한증이 생겨버렸사옵니다. 태의가 벌써 와서 살펴보고 말하기를 신첩이 찬바람을 맞아 양기가 상하여 몸과 손발이 차가워져 물을 토하고 기혈이 뭉쳐서 운행이 원활하지 못하니 몸살이 나는 것이라 했사옵니다."
혜귀비는 몸을 살짝 기울여 황제의 팔에 기댔다.
"지금 신첩이 현기증이 나고 몸이 지쳐서 무릎이 시큰시큰 쑤시고 아프옵니다."
황제는 매우 안타까워하며 외쳤다.
"여봐라! 어서 귀비를 부축하여 안으로 들어가 앉게 하라. 손난로도 많이 가져와서 따뜻하게 하여라."

혜귀비는 채주의 손을 잡고 두 걸음 내딛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했다. 황제는 한숨을 쉬며 혜귀비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짐이 그대를 데리고 들어가겠다."

황제는 쉴새없이 혜귀비의 몸을 걱정하느라 들어올 때부터 여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여의와 해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처마 밑에 서서 찬바람을 온 몸에 맞으니 강철로 된 칼로 살을 한 점 한 점 도려내는 것 같았다. 해란은 온몸을 벌벌 떨면서 서있어도 똑바로 서있지 못하고 여의와 아약이 부축해야 비로소 간신히 서있을 수 있었다. 황제는 오로지 혜귀비와 이야기할 뿐, 처음부터 끝까지 여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여의는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고 괴로웠고, 앉지도 못하고 서지도 못한 채, 여기서 얼어붙어서 곧 녹아 없어져버리면 그만일 얼음이 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황제는 그 둘이 곁에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직도 여기 서서 무얼 하는 것이냐? 가서 따뜻한 옷으로 갈아 입어라. 흥건하게 젖어서 귀비에게 찬 기운을 옮기고 섰지 말고."

황후가 온화하게 말했다.
"됐네. 모두 물러가 해란의 처소에서 옷을 갈아입히고 다시 어가를 뵈러 오게."

여의는 황제가 아무래도 여전히 가엾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해란을 데리고 물러나왔다.

난각에 들어가 앉으니 황제가 수행하는 태의에게 외쳤다.
"제노, 너는 태의원의 원판이라 항상 귀비의 몸을 보살펴왔지. 어서 귀비를 살펴보고 어떤 병증이라도 놓쳐서는 아니된다."

제노는 서둘러 대답하고 진맥할 약포를 가지고 와서 잠시 괴어놓고 말했다.
"귀비마마의 한증이 가볍지 않사온데 화까지 나셨으니 이틀은 잘 쉬고 돌보셔야 하옵니다."

황제가 한숨을 쉬며 가엾게 여겨 말했다.
"이전에 겨울이 오면 그대의 몸이 유난히 약했는데 오늘은 무엇 때문에 이리도 화가 난 것이냐?"

혜귀비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자 흘러넘치지 않도록 가볍게 눈가를 닦으며 목 메인 목소리로 말햇다.
"함복궁이 불행하고 신첩도 제대로 단속하고 가르치지 못하여 결국 제 궁의 사람이 도둑질을 하는 면목 없는 일이 일어났사옵니다. 해상재가 다른 것을 훔쳤다면 신첩도 오랜 자매간의 정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냥 보내주었어도 됐사옵니다. 하필이면 신첩이 겨울에 모자라면 안되는 홍라탄을 훔쳤사옵니다."

황제는 매우 의외라는 듯 황후와 마주보고는 물었다.
"해상재가 그걸 훔쳐서 뭘 한다더냐?"

황후는 한숨을 쉬며 안타까워했다.
"궁중에서 해상재와 완답응만이 신분이 낮아 홍라탄을 쓰지 못하니 해상재가 잠시 어리석어서 그리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혜귀비는 작은 깃털 부채같이 가볍고 긴 속눈썹을 드리우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매번 신첩이 시침을 들라는 부름을 받을 때마다 해상재가 화가 나서 깨고 부수는 소리를 말심과 시종들이 들었다 하옵니다. 신첩은 개의치 않았지만 설마 이번에는 이토록 악독할 줄 몰랐사옵니다. 신첩은 흑탄의 냄새는 맡지 못하고 줄곧 홍라탄만 사용하여 따뜻하게 하였사온데, 해상재가 신첩의 홍라탄을 훔쳐서 한증이 도지게하여 신첩을 해치려 하였사옵니다......"


혜귀비가 막 눈물을 떨구고 있는데 여의가 벌써 해란의 옷을 갈아입히고 함께 들어오자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해상재는 어찌 들인 것이야?"

여의가 해란을 데리고 예를 올리자, 해란은 여전히 깜짝 놀란 작은 새처럼 쭈뼛쭈뼛하며 온몸을 덜덜 떨면서 여의의 뒤에 움츠러들어 있었다.

황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신반의하는 투로 말했다.
"보아하니 해상재는 연약한 사람이 어찌 심사가 그리 독한가?"
황후는 여의를 보았다.
"한비, 듣자니 자네가 함복궁에서 큰 소란을 피우고 함부로 떠들었다던데 대체 어찌된 일인가?"

여의는 몸을 굽히고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상, 황후께 아뢰옵니다. 신첩 어찌 감히 마음대로 떠들겠사옵니까. 다만 해상재가 '훔친 사람과 훔친 물건 모두 붙잡혔다'며 발바닥에 장을 맞고 몸수색까지 하는 것을 보고 신첩 해상재를 대신하여 변명 몇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사옵니다. 게다가 신첩이 만약 정말로 소란을 피웠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온 몸에 얼음물을 끼얹어놓고서도 찍소리 한마디 못하겠사옵니까?"

황제는 두 사람을 흘끗 보더니 아랑곳 않고 말했다.
"생강탕을 마시고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냐? 한기를 몰고 들어오지 말라."

여의는 해란이 자신의 뒤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움츠러들어 있는 것을 보고 더더욱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이 들어 대답했다.
"예. 모두 마셨사옵고, 감히 귀비마마께 한기를 옮길 수 없사옵니다. 다만 황상......"
여의는 고개를 들고 황제의 차갑고 날카로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상, 비록 귀비께서 해상재가 쓰고 난 재에서 홍라탄의 재를 발견하였고 향운이 증언하고 있지만......"

황제의 말투는 냉담하여 전혀 급하지 않은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이냐? 짐은 날이 막 추워졌을 때 궁중에서 해상재와 완답응은 홍라탄을 쓸 수 없어서 흑탄에 그을릴까 걱정이라고 그대에게 한 마디 당부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완답응은 확실히 지위가 낮으니 그만이고, 해상재 처소는 그대가 그대 궁에서 조금 꺼내 해상재에게 나누어 주어야겠다고 했다. 짐이 기억하기를, 그날도 그대에게 이 일은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밖에 알리기 적당하지 않다 분부했다. 그대도 참으로 고지식하구나. 귀비가 이렇게 화를 내는데 그대는 한마디도 고하지 않았구나."

여의는 곧장 황제가 지키고 보호하려는 뜻을 알아차리고 자책하며 말했다.
"모두 신첩의 잘못이옵니다. 말하지 말라는 황상의 분부를 생각하여 해란 아우에게 특별히 당부하였사옵니다. 해란도 본래 신첩과 같은 마음이라 감히 말해서 시비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 했는데 이리 말썽을 일으키게 될 줄은 몰랐사옵니다."

황제의 눈은 오로지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귀비만 바라보며 몹시 아껴 마지 않았다.
"본래 한비가 매우 어리석어서 중재하는 법을 모른다. 귀비는 본래 몸이 약하니 이렇게 화를 내면 어찌 감당하겠는가?"
황제는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왕흠, 기억해뒀다가 내무부에 분부하거라. 이후 함복궁에 무엇이 없고 무엇이 모자라든 내무부에 말해서 이리 말썽피울 필요 없이 즉시 양심전에서 가져와 귀비가 쓰도록 해라."

혜귀비의 표정은 붉으락 푸르락하여 좋지 않았지만 이 말을 듣고 비로소 풀어져서 방긋 웃었다.
"황상께서 관심을 갖고 돌봐주시니 망극하옵니다."

황제의 말투가 사월 봄바람처럼 가볍고 부드러워졌다.
"그래. 이미 한증이 도졌으니 어찌 잘 보양하지 않고 이리 고생하는 것인가? 어찌 자신의 몸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혜귀비는 아직도 수긍할 수 없었다.
"비록 황상께서 한비에게 몰래 해상재를 돌보라 분부하셨지만 향운도 분명히 해상재가 훔치는 것을 보았다고 했사옵니다. 해상재는......"

황제의 말투에서 냉담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아주 온화해졌다.
"이 일은 사실 작은 일이고 귀비 그대의 몸이 더 중요한 게 아니겠느냐? 해란에 관한 것이라면 그대를 화나게 할 뿐이니, 짐이 해란을 함복궁에 살지 못하게 하면 될 것이다."

여의는 이 말을 듣고 기뻐서 서둘러 뒤에 있는 해란을 바라보니, 해란의 창백한 얼굴에 조금 붉은 기가 떠오르며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움켜쥐듯 여의의 소매를 단단히 붙잡았다.

혜귀비가 급히 말했다.
"훔친 건 그만이지만, 윗전에 대드는 것은 궁중의 큰 죄이온데 황상께서는 이리 쉽게 용서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리고 한비는 이렇게 우악스럽고 무례하온데......"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때리면 때리는 것이고 벌하면 벌하는 것이지. 한비와 해상재는 온몸에 얼음물을 뒤집어 썼으니 처벌을 받은 셈이다. 오늘의 일은, 짐은 상벌이 분명해야 하니 그대가 화를 풀고 이 일은 넘기도록 하자."
황제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
"오늘의 일에 고발한 자는 누구냐?"

향운은 쭈뼛쭈뼛 무릎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소인이옵니다."

황제가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않자 왕흠이 말했다.
"해상재를 모시는 궁녀 향운이옵니다."

황제는 그제서야 향운을 흘끔 보았다.
"생김새도 준수하고 반듯한데 혀도 민첩하구나. 오늘밤의 일이 벌어진 것은 저 혓바닥의 공이 크다."

향운이 기뻐하며 말했다.
"황상의 칭찬에 망극하옵니다."

황제는 허리에 찬 해동의 푸른 옥패를 만지작거리며 아랑곳않고 말했다.
"왕흠, 데려가서 몽둥이 찜질을 하여 죽여라."

왕흠은 깜짝 놀랐다가 서둘러 대답했다.
"예."
왕흠이 고개를 치켜드니 몇몇 태감들이 뜻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향운을 잡아 끌고 갔다. 향운은 놀라서 용서를 구하지도 못하고 찢어진 자루처럼 사람들에게 끌려 나갔다.

밖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수십 차례 이어져 들려오다가 점점 약해지며 사라지자 시위 한 명이 들어와 고했다.
"황상, 향운이 이미 맞아 죽었사옵니다."

해란은 몸서리를 쳤고 여의는 그저 한가닥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가 빠르게 입가에서 지워버렸다.

황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혀를 뽑아 궁문에 걸어서 시비를 부추기고 주인을 모해하는 것이 어떤 꼴이 되는지 온 궁중의 모든 사람들이 보게 해라!"

여의는 돌연 두려워졌다가 시선이 우연히 황제의 깊고 맑은 물같은 눈길과 마주치자 마음이 느긋하고 태연해져서 마치 눈밭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멀리 인가의 등불을 발견하고 의지할 곳을 찾은 것 같았다. 황제의 시선은 곧장 옮겨져, 마치 여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아보였다.

혜귀비는 놀라고 두려워서 온몸이 하염없이 떨리자 황제는 혜귀비가 매우 사랑스러운 듯 외투를 단단히 둘러주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두려워 말거라! 모두 아랫것들이 잘못한 것이니, 그대는 안심하고 따뜻하게 몸을 잘 보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혜귀비는 황제가 마음을 놓으라 위로하자 이를 악물고 억지로 미소지었다.
"예. 이렇게 떠벌리고 다니는 시종은 남겨둘 수 없으니, 황상께서 처분하지 않으셨으면 신첩이 일벌백계하려 하였사옵니다. 다만 혀를 뽑으면 피가 철철 흐르니, 이왕 이 홍라탄의 일에 시비를 가리게 된 것, 뜨거운 탄을 입에 집어 넣어서 어쨌든 시신은 온전하게 보존하려 하였사옵니다."

황제는 귀찮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혜귀비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것도 괜찮지. 그대가 이리 너그러이 용서를 구하니 시신은 보전케 하겠다."
황제의 눈빛이 잠시 가라앉으며 뭇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 귀비가 보인 모범을 후궁의 모든 사람들은 잘 새겨 두라. 궁중의 어떤 노비도 시비를 부추기고 풍파를 불러일으켜서는 아니된다. 그렇지 않으면 짐은 주인의 잘못이 아니라 너희의 입과 혀에 죄를 물을 것이니 혀를 뽑고 입을 지지는 고통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다!"

온 궁의 궁인들이 매우 놀라 혼비백산하여 즉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는 향운이 시비를 만든 것이옵고, 소인들은 감히 그리하지 못하나이다."

황제는 꽤 피곤해져서 하품을 하며 말했다.
"됐다. 밤이 깊었으니 그대도 어서 쉬어라. 짐과 황후도 양심전으로 돌아가야겠다."

뭇 사람들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황상을 배웅하옵니다. 황후마마를 배웅하옵니다."

황제는 황후의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나가며 여의와 해란을 지나치다가 잠시 멈추고는 마치 아주 하찮은 먼지와 작은 풀을 보듯 어떠한 온기도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해란을 훑어보다가 돌아볼 가치도 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계속 함복궁에 머물면 귀비를 화나게만 할 뿐이니 다른 곳에 머물라."

여의가 서둘러 말했다.
"황상, 연희궁이 아직 비어있사옵니다......"

황제는 조금 귀찮은 듯 말했다.
"그럼 그대가 해상재를 잘 가르쳐서 이런 큰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해라."

여의는 대답하고나니 마음이 풀리고 후련해져서 해란을 데리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연희궁에 돌아오자 이미 밤이 깊었다. 해란이 안쪽에 있는 전각에 머물도록 안배하고는 태의가 와서 진료하도록 청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의는 침전으로 들어가 조금 쉬었다. 비록 두툼하고 따뜻한 상의로 갈아입었고 여의도 손난로를 보듬어 온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온몸이 추위로 덜덜 떨려서 궁녀를 시켜 화로를 몇 개 가져오게 하여 불을 쬐었다. 어린 계집종 녹흔이 옻칠 위에 은으로 소나무 문양을 그려넣은 사발에 설탕에 재운 진한 생강탕을 여의에게 먹이고 담비가죽 덮개를 여의에게 두르고 단단히 여몄다. 여의는 한 사발을 들고 큰 망토를 두르고 화로 곁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덥히는 아약에게 갔다.
"어서 진하게 한 사발 마시고 한기를 내보내거라."
아약이 얼른 고개를 들고 마시고 여의도 몸에서 더운 땀을 내자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몇번 하니 그제서야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예심은 벌써 태의를 모시고 해란을 보고 있다가 이때 따라와서 허 태의에게 여의의 진맥을 봐달라 청했다. 허 태의는 붉은 자주색의 진맥용 받침을 여의의 손목 아래에 놓고 새하얀 비단을 한 장 그 위에 얹은 뒤 "송구하옵니다"라고 말하고 두 손가락을 여의의 손목에 올려놓았다.

잠시, 허 태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비마마, 천만다행이옵니다. 평소 건강하셨고 다만 감기에 조금 걸린 것이옵니다. 소신이 열을 내어 몸밖으로 내보내는 처방을 써드릴테니 마마께서는 며칠 약과 생강탕을 드시고 보온에 주의하시며 생강과 쑥잎을 달인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씻으시면 곧 좋아지실 것이옵니다. 허나 반드시 요 며칠 동안은 또 바람을 쐬시면 아니되옵니다."

여의는 비단 손수건으로 코를 꼭 눌러 막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태의. 해상재는 어떠하오?"

허 태의는 고개를 저으며 망설이는 것 같아보였다.

여의는 갈수록 불안하여 말했다.
"허 태의는 항상 오가며 본궁을 도맡아 살펴주던 사람이니 할 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해도 괜찮소."

허 태의가 거듭 깊이 생각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찬바람을 쐬고 깜짝 놀라는 것은 별일 아니옵니다. 소신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약을 해상재께 올려서 이미 안정되어 주무시고 계시옵니다. 감기가 비록 심하오나 잘 돌보면 별 지장 없사옵니다. 심각한 것은 해상재 발의 상처이옵니다."

허 태의가 말했다.
"해상재는 발바닥의 용천혈을 맞아서 부상을 입은 데다가 이렇게나 허약해져서 큰 병이 생겼사옵니다."

여의는 이상히 여겨 말했다.
"용천혈?"

허 태의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예. 용천혈의 다른 이름은 충혈(冲穴)로, 본래 신장을 거쳐 머리의 혈(首穴)로 올라가며 신장의 맥과 심장의 맥이 교차하는 급소이옵니다. 소신이 소주의 발바닥을 살펴보니 용천혈의 위치가 가시나무로 중상을 입은 곳 바로 아래에 있으니, 아랫사람들이 이곳을 특별히 고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사옵니다. 이 혈은 일단 손상을 입으면 신장의 맥과 심장의 맥이 동시에 손상을 입는 것과 같아서 잠을 못자 나른해지고 정력이 부족하며, 현기증이 나고 초조해지며 두통이 생기고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등의 증상이 발생하오며, 그 위에 소주께서 찬바람까지 맞으셨으니 참으로 위험 중에 더한 위험이옵니다."

여의는 대경실색하여 마음이 무겁고 어지러워 급히 물었다.
"태의, 무슨 치료 방법이 있겠는가?"

허 태의는 한참 망설이다가 비로소 말했다.
"소신이 세심하게 고려하여 한기를 내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처방을 쓸 것이옵니다. 그리고 청컨대 마마께서 상재를 시중드는 궁인들에게 명하시어 매일 뜨거운 소금물에 마마의 두 발의 용천혈을 담그게 하고, 적응할 수 있는 온도의 뜨거운 물에 매일 잠들기 전 반 시진씩 하도록 해주시옵소서. 이 외에 매일 정오에 한번씩 용천혈에 쑥뜸을 놓고, 뜨거운 느낌이 드는 온도로 연기를 쐬어주고 오수유를 쪄내어 발에 바르고 잘 감싸 두옵소서. 상처가 좀 아물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일 주물러주면 효과과 있을 것이옵니다."

여의는 허 태의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안심이 되어 찡그렸던 미간이 조금 펴졌다.
"그럼 허 태의가 수고해주시구려. 녹흔, 허 태의를 잘 배웅해드리거라."

허 태의가 작별을 고하고 물러가고, 여의는 안쪽 전각을 잠깐 바라보고 있으니 예심이 서둘러 말했다.
"소주, 안심하시옵소서. 모두 잘 될 것이옵니다. 해상재께서는 안심 탕약을 드시고 곧바로 잠이 드셨는데 연거푸 몸을 뒤척이시는 것을 보니 지칠 대로 지치신 것 같았사옵니다. 마마께서 해상재를 보러 가고 싶으시다면 내일까지 마마께서도 푹 쉬셨다가 가시지요."

여의는 나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래. 나도 피곤하구나. 쉴 준비를 하거라."

예심이 대답하고 가서 뜨거운 물을 받들고 시중을 들러 오자 아약은 여의가 해란의 몸에 갈아입혔던 옷을 퍼덕이며 마음의 분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손에 힘을 주어 더욱 팡팡 털었다. 여의는 듣기 싫어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길래 큰소리를 내는 것이냐?"

아약이 제멋대로 말했다.
"소주께서 추위를 겪으시니 소인의 마음도 시려서 화가 났사옵니다. 혜귀비가 대체 누구더이까? 전에 잠저에서 시중들 때에 소주보다 한 품계 낮던......"

여의는 마음이 편치 않아 아약의 말을 끊었다.
"됐다! 지금은 지금이니 이전의 일을 다시는 거론하지 마라!"

아약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제는 감히 이렇게 소주에게 굴욕을 주다니요. 소주, 소주께서는 반드시 방법을 생각하셔서 다시 이런 억울함을 겪으셔서는 아니되옵니다."

여의가 몸을 돌려 손에 들고 있던 탕그릇을 곁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쑤시던 궁녀에게 주었다.
"정리를 마쳤으면 모두 물러가보거라. 화로도 뒤적거릴 필요 없다."

궁인들이 모두 물러가고 예심은 한쪽에 조용히 서서 탁자 위에 있는 녹색 유약으로 된 산예(狻猊)[각주:2] 모양의 화로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을 더해 넣고 있었다. 그 새하얀 연기는 앉아있는 사자의 입 모양으로 된 뚜껑에서 유유히 새어나와 따뜻하고 고요한 향기로 조용히 아무런 흔적 없이 이 침전에 공중에 어지러이 퍼져나가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의는 손난로의 법랑 뚜껑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했다.
"아약, 네 뜻대로 하려면 내가 어찌 해야 하겠느냐?"

아약은 들고 있던 꽃과 배나무 무늬가 있는 옷을 아무렇게나 탁자에 올려놓고 눈을 깜박거리며 갑자기 일어났다.
"소인의 생각대로라면 쉽사옵니다! 사람은 기개로 살고 나무는 껍질로 산다고 하였으니 이 기세로 싸우고 와야 하옵니다."
아약은 여의에게 다가와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았다.
"소주께서는 무엇이 두려우시옵니까? 소주께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실 필요 없으시옵니다! 가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라나랍 씨는 중궁 황후를 배출했고 집안은 부찰 씨보다 높으니 대기(抬旗)한 포의 집안은 말할 것도 없지 않사옵니까? 신분으로 말하자면, 비와 귀비의 자리는 한 품계 차이일 뿐이니 어느 날 불시에 넘어서게 될 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총애로 말하면, 소주는 전부터 황상의 사랑을 그녀와 나누어 가져오셨으니 수완을 좀 부려서 황상을 구슬리면 황상께서도 앞으로 자주 연희궁에 오실 것이옵니다." 여의는 뜨거운 차를 홀짝이고 천천히 손등을 문질러 따뜻하게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모두 이치에 맞는 말이야. 허나 네 눈은 너무 높아서 그저 나의 장점만 볼 뿐, 단점은 보려 하지 않는구나."

아약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점이라고요?"

난로의 연기가 얼굴로 자욱하게 몰려오고, 따뜻하게 덥혀진 실내에 놓인 납매 향기가 문득 진하게 풍겨오니 잠시 따뜻한 봄날 사월의 매화꽃 밭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창밖은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엄동설한이었다. 게다가 궁중의 좋은 기회는 이 겨울날보다도 더 차가울 뿐, 어떻게 해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여의는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침착하게 말했다.
"한 사람의 장점과 우세는 금상첨화라 좋은 점이 더 좋게 될 뿐이다. 허나 그 사람의 단점과 결함은 자칫하면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위험한 지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지. 그러니 내가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는 장점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아주 많이 추락시킬 수 있는 단점을 보는 것이니라!"

아약은 잠시 대답하지 못하다가 할 수 없이 물었다.
"그럼 소주께서는 계속 이렇게 참으실 생각이시옵니까?"

여의는 손이 살짝 떨리며 답답하여 한숨을 쉬었다.
"지금의 내 형편이 결코 좋지 않으니 무턱대고 싸운다면 여지없이 참패를 당할 뿐이다. 참고 지나가면 앞으로의 나날은 좀 여유가 생길테니 그렇게 참기 어렵지 않을 게다. 만약 참지 않는다면 영원히 낭떠러지 길로 내몰리게 될 것이니 그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다."

아약은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말을 하지 못했다. 여의는 이마를 괴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오늘 밤은 화내고 추위에 떨어서 너도 피곤할테니 어서 가서 쉬거라."

아약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예심은 여의를 부축하여 침대에 눕히고 쉬게 했다. 여의는 예심이 자주색 주렴 장막을 풀어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심은 솜을 틀어 안감을 대고 아주 옅은 옥색으로 꽃무늬가 그려진 짙은 자주색 상의에 아래에는 한층 더 어두운 자주색 비단 치마를 입고 이렇게 주렴 뒤에 흐릿하게 서있으니 마치 주렴 안에 녹아들어간 듯 한폭의 수묵 산수화 같은 어두운 그림자만을 남기고 있었다.

여의가 희미하게 한숨을 쉬자 예심이 황급히 물었다.
"소주, 탕파(汤婆)가 몸을 데우기에 덜 따뜻하옵니까?"

여의는 예심의 손등을 토닥였다.
"방금 아약이 그렇게 엄청난 이야기를 하는데도 너는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더구나. 허나, 오늘 밤에 네가 양심전에 가서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면 황상께서 그렇게 빨리 오시지 못했다."

예심의 표정은 물처럼 깊고 조용했다.
"소인이 함복궁 밖에서 기다리다가 소주께서 굴욕을 당하시는 것을 보고는 당연히 가서 고해야 마땅했사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이냐?"

예심이 조용히 말했다.
"소인이 왕 공공을 보았사온데, 왕 공공이 말하기를 이는 함복궁의 일인 만큼 함복궁의 주인이 결정할 일이라 하며 소인을 내쫓았사옵니다. 다행히 이옥 공공이 숙직 차례가 되어서 소인을 보고는 그제서야 황상께 가서 고하였사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을 그르쳤을 것이옵니다."

여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왕흠의 어디를 보아 서로 잘 지낼만한 사람이란 말이더냐? 그는 항상 황후와 귀비의 말만 들었다."

예심은 공손히 눈을 내리깔며 낮게 말했다.
"왕 공공은 잘 지낼만한 자가 아니고 사람을 가리는 자이옵지요. 허나 이 공공은......"

여의의 미간이 펴지며 예심의 손을 토닥이며 웃었다.
"이게 바로 네가 아약보다 세심한 부분이지. 말은 많지 않고 눈은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을 보고 있구나. 내가 공연히 너를 아끼는 것이 아니다."

예심은 침대 앞의 단 위에 곧게 무릎을 꿇고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소인이 막 잠저에 들어왔을 때, 한낱 거간꾼에게서 단돈 이백 냥에 팔려온 어린 계집종에 불과하여 주방에 장작을 패러 보내지고,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천민이었사옵니다. 소주께서 소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주방의 땔감더미에서 소인을 데리고 나오셔서 오늘날의 이 자리에까지 이끌어주셨지요. 소인은 할 말이 아무것도 없지만, 몸과 마음을 다하여 소주를 지키고 시중들 수 있으면 되옵니다."

여의는 마음이 훈훈해져 예심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래, 그래. 요 몇년 동안 내가 공연히 너를 이렇게 대한 것이 아니지. 아약은 영민하지만 입이 너무 가볍다. 너는 생각이 차분하니 나 대신 두루 살펴봐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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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구마가 풍년인 가운데 가끔 이렇게 솟아나는 사이다가 있어야 사람이 볼 맛이 나지요. 우리 황샹 츤츤츤데레
2. 요즘처럼 고구마가 너무 풍작이면 아약의 철없는 소리도 반갑지말입니다.
3. 모두들 미세먼지 조심하세요! 저는 열심히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도 미세먼지의 습격을 막지 못하고 주말에 장렬히 전사ㅎ... ㅇ<-<
4. 참 이번에 공개된 Bazzar X 여의전 화보 보셨습니까? (벽뿌숨





  1. [역자주] 백자련: 아가판투스, 일명 나일강의 백합 [본문으로]
  2. [역자주] 산예: 사자와 비슷한 전설상의 맹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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